[연재소설] 청룡도(靑龍刀를 꿈꾸며
[연재소설] 청룡도(靑龍刀를 꿈꾸며
  • 이 은호 작
  • 승인 2019.07.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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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옥균 그리고 홍경래
  다시 차령의 한 동리에 왔다. '광정리'. 행정구역으로는 충청도 공주에 있는 한미한 리(里)다. 추석이 지난 후 가을이 완연하다. 찬바람과 함께 나뭇잎이 변하면서 영혼이 튼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몸살(?)을 선물할 터이다.
  광정리에는 김옥균의 생가지(生家地)가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틈만 나면 이곳을 찾아오곤 했다. 그건 김옥균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이다.
  얼마 전에 바둑소설을 한 권 출간했다. 연재와 출간 과정을 거치면서 아쉬움과 반성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두 해 동안 '주역해고'를 출간하고 '한국바둑사' 출간을 준비하면서도 내내 또 다른 바둑소설을 써야겠다는 부담에 시달렸다. 왜 바둑소설이며 그것을 써야 하는지는 확연치 않다.
  바둑사(史)의 정사를 추구하면서 사실(事實)로 밝히지 못하는 다소간의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은 소설이 강점이 있기에, 소설과 역사 양쪽에 관심이 많은 나의 부채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김옥균을 풍운아라 믿는다.
  풍운(風雲)은 역사의 다른 표현이다. 풍운아는 역사의 존재란 의미이기도 하다.
  김옥균은 혁명적 정치인이다. 동시에 한없는 바둑인이기도 하다. 나는 바둑인으로서의 김옥균을 주목했다. 그를 소설화하기 위해 그의 생가지와 무덤이 있는 예산을 무상으로 다녔다.
  그에 대한 모든 역사적 자료를 남김없이 찾아 읽었다. 그 와중에 갑신정변의 방대한 수사 자료인 '추안추급안'을 해독해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공부를 했다. 그 과정에서 김옥균의 충복으로 정변시 행동대장으로 활약한 '이규완'을 만났다. 이규완은 한양 보부상의 두령으로 정변의 가장 앞에 서서 직접 칼을 휘두른 무사기도 하다. 이규완은 심문조서에 "나와 균은 두 몸이 아니다."란 말을 남긴다.
  이규완은 홍경래난에 참가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집안의 후손이다. 이규완은 할아버지 아버지 대의 비원을 늘 가슴에 담고 살다가 제2의 혁명을 꿈꾸는 김옥균을 만나 아낌없이 천금을 투척하고 목숨을 버린 협객이다. 이규완은 바둑의 고수기도 했다.

靑龍刀
壁上靑龍空自鳴
何時俑匣適群英
乘風快渡長江去
殺盡群匈複大明
벽에 걸려 있는 청룡(검)이 운다.

어느 때나 영웅은 갑주를 입고 바람처럼 강을 건너 흉도를 짓밟고 대명을 회복할까.
18세기 충청도 희덕에 살았던 한 여류의 시다. 여류의 시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방하고 진취성이 살아 있다. 청룡도는 출전을 앞둔 무부(武夫, 조선은 장교를 무부라 불렀다)의 칼이다.
  김옥균과 홍경래는 내일의 혁명을 꿈꾸고 벽상의 청룡도를 꺼내 든 사람들이다. 청룡도는 한 권의 소설이면서 두 권의 소설이기도 하다. 홍경래전과 김옥균전이랄까.

김옥균에게 이규완이 있었다면 홍경래에게는 이희저가 있었다. 칼 잘 쓰고 바둑 잘 두던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손자로 역사를 비껴 소설로 만난다. 모두 19세기를 파천으로 몰아넣었던 영웅이자 협객이다.

나는 청룡도가 역사소설과 바둑소설로 읽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현대를 살면서 누구나 벽상에 신기루 같은 청룡도를 한 자루씩 걸어 놓고 산다. 의식하던 그렇지 못하던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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