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의 충청역사 칼럼] 장곡사 별곡
[이청의 충청역사 칼럼] 장곡사 별곡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7.26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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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장곡사 그리고 우리가 기억에서 잊은 보광암

청산도 백운도 아닌 것이 머리 검고 두발로 걷는 양족존(兩足尊)이라고 고향마을에 와 칠갑산 장곡사 일주문에서 저녁을 맞는다. 해탈은 피안(彼岸)이다.

육조(六祖)는 '단경'에서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말했다. 이 언덕은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이고 저 언덕은 내가 정신으로 지향해야 할 저곳일까.

나는 절집에오면 사물(四物)을 먼저 본다. 지심귀명래가 울려 퍼지는 절집에 황혼이 내리는 순간 바라보는 사물은 얼마나 서사적인가. 장곡사 하대웅전은 찰지고 단정하다. 일대사(寺)의 대웅전의 좌측은 마음의 자리다. 심검당은 텅 빈 공간이다. 이것이 색과 공의 조화를 생각한 절집의 모양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사물이다. 사물은 세상을 들깨우는 소리판이다.  사물성(聲)은 인간과 축생을 부촉하고 삼악도에 고통 받는 중생은 물론, 윤회의 과정에 있는 중음신(中陰身)에까지 법고청신을 들려준다.

천수천안을 본다. 삼백존불 중 하나 백의존(尊)도 본다. 그 앞마당에 오두막한 운학루에 올라 큰북(象鼓)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몇 년 만에 찾아온 고향인가. 나는 큰북을 어루만지며 '불소행찬'의 한 구절을 되씹는다.

나는 무덤 사이에 시체와 해골들과 지낸다. 목동이와 오줌을 싸고 침을 뱉기도 한다. 그들 중 한명은 나의 귀에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한다. 나의 목과 얼굴에는 오랜 먼지로 인해 저절로 가죽푸대를 마련한다.

장곡사는 나의 할머니가 마벽초 스님을 존경하여 죽을 때까지 다니셨던 절이다. 그런 인연과 평소 절집을 좋아하던 나는 장곡사를 아주 잘 안다고 믿었다.  실제로 장곡사를 그린 다큐멘터리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전 경허 스님의 친필 유묵전에 갔다가 그것이 착각임을 알고 허허로웠다.

경허 스님 친필 유묵은 지금껏 일곱 점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한편에 '장곡사 보광암 비구니'에게라는 별고(別稿)를 보고 나는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장곡사에 보광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그곳에 여승이 기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대의 선승인 경허스님이 고문으로 깨달음을 재촉하는 질문은 압권이었다.

혹 분별의 헤아림에 족하지 못하거나 분별을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둘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말해 보거라. 사오백 가지 드리운 버드나무 언덕이요 이 삼천 곳 풍악 울리는 누대로다.
이것이 둘이 아닌 소식인가. 안다면 어리석고 완악하고 모른다면 문득 서로 통하리라. 이러한 경지에 달했다 해도 단시 삼생 육겁을 참구해야 하리라. (경허 스님 글)
경허 스님은 장곡사 보광암 비구니에게,라고 적었다. 1907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글의 작성시기에 장곡사에는 보광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그곳에 도를 구하는 여승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청양군지와 청양문화원 자료 등을 뒤져 보광암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자료가 없었다.
하여 청양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잔뼈가 굵은 지역문화 지킴이 김명숙 님을 찾아 장곡사 암자를 물었다.  

이분이 장난이 아니다. 지역신문 기자로 20년, 지방의원으로 8년을 향토문화 지킴이로 살았으니 지역 곳곳을 안다할 것이다. 그도 보광암은 모르고 자신이 어렸을 때 어른들한테 칠갑산에 무장공비가 출몰했을 때 장곡사에 딸린 암자 두 곳을 소개했다는 말을 들었다 증언한다.
(賭棋之樂勝看書 何特仙山四皓居 拓地千兵閑似鶴 潰圍一帶活如魚 指端點點江鴻下 枰上丁丁 夜雨疎 犄角連環君莫道 消長夏計信紆餘) - 경허집.
경허 스님은 바둑 시 몇 편을 남겨 놓아 소개한 바 있다.

위의 시가 그 중 하나다.  그의 손길이 고향땅 작은 절집 장곡사에 내려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감격(?)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려놓았던 소설쓰기에 나설 참이다.
일대의 선승 경허, 그리고 선지식과 소통이 되는 한 여스님의 생사벽관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보고 싶은 집필욕에 사로잡혔다. 고향땅 절집 마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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