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는 의리 없는 집단이라더니
[시론] 정치는 의리 없는 집단이라더니
  • 이회윤 기자
  • 승인 2024.01.2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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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믿어서도, 정을 줘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 국민들 사이에 회자(膾炙) 돼 온 게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하고는 일단, 당선된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들 앞에 제왕처럼 군림하려 드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은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주민들과 접하는 시간이 잦지만, 국회에 입성하면 얼굴은커녕 국회의원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어려워 웬만한 사람은 아예 꿈도 못 꾸는 곳이 여의도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내 비 이재명계인 ‘원칙과 상식’의 조응천, 이원욱, 김종민 의원 등 3명이 ‘이재명 대표 사퇴를 전제로 당 통합비대위’를 요구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당을 떠나 ‘미래대연합’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원칙과 상식’은 당초 윤영찬 의원까지 모두 4명이었다. 이들은 최후통첩 시한인 지난 10일까지 이 대표가 답을 주지 않으면 탈당 공동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었으나, 불과 30분을 남겨놓고 윤 의원이 돌연 당에 잔류하겠다며, 빠지는 바람에 3명이 된 것이다.

윤 의원이 당 잔류를 통보해 온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을 조 의원 등의 충격은 구태여 그들에게 묻지 않아도 뻔하다. 그래도 조응천 의원 등은 그를 향해 한마디 비난도 하지 않은 채 의연하게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아마 비난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여겨서였을지도 모른다.

윤 의원은 오래전부터 탈당을 고민해왔다는 짤막한 잔류 이유가 측근을 통해 전해지기는 했지만, 최근 성희롱 문제로 당 윤리감찰단에 회부 될 위기에 놓인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윤 의원의 당 잔류와 함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구설(口舌)도 있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현근택 민주연구원장 부원장이 윤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 중원구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윤 의원이 위기를 느껴 ‘원칙과 상식’에 합류했을 것이라는 점과 현 부위원장 공천 문제로 친명계의 좌장인 정성호 의원과 이 대표가 카톡으로 나눈 대화가 공개된 점 등이 ‘원칙과 상식’의 탈당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윤 의원이 “괴한에게 피습당하고 병석에 누워있는 이재명 대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연민의 정을 느낀 나머지 탈당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나을 법도 했을 텐데, 생뚱맞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 운운하는 바람에 오히려 정치적 생명이 끊길 짓만 자초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이미 당에서도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조 의원 등의 미래대연합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사실상 정치적 고아가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의 지지자들 말고는 윤영찬이라는 사람이 민주당에 남아서 공천을 받든 말든 국민들은 크게 관심이 없다. 

가뜩이나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이번 일로 인해 싸잡아 ‘의리 없는 집단’이라는 과표 하나만 더 붙게 된 것이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사실 여부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섣부르게 판단했다가 위기에 몰렸던 한 정치인이 모 지인에 의해 가까스로 모면하게 됐을 때 ‘우리는 평생 동지’라고 했다가 헌신짝처럼 걷어차였던 16년 전의 씁쓸했던 그 지인이 떠올라 몇 줄 적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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