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서면 원두리(元頭里)
[지명유래] 서천군 서면 원두리(元頭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3.04.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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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리는 백제 때 비중현 소속이었으며, 신라시대 서림군의 영현인 비비현에 속했었고, 고려 때는 임천의 비인현 소속이었다. 그 후 조선 말 비인군 서면의 지역으로 원머리 또는 원두리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면의 서화리, 동화리, 장포리와 서면 원두리 일부를 합하여 원두리라 해서 서천군 서면에 편입되었다. 원두리는 1리 동포와 2리 당포로 나누어진다. 동포마을은 메재, 벌뚝, 재뜸으로 구성되었는데, 메재는 매재라고도 하며 매봉 같은 형국의 지형으로 매가 나르는 재(山寺)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전해진다.

재뜸은 재 부근에 자리 잡았다 해서 그렇게 부르며, 벌뚝은 들녁에 있는 둑에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서 벌뚝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동편에 장군봉이 있고, 마을 안으로 한전에서 이용하는 산업철도가 지나며 열차가 교환하는 원두역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당포는 원두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곳으로 뿌리를 벋어가는 곳이라 해서 원머리라 부르는 지역이 있고, 원머리 서남쪽으로 칠성바위라는 곳은 옛날 장수 한 사람이 던져서 아래로 떨어진 칠성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칠성암이라고도 한다.

원머리 서쪽지역을 장개뜸, 장포라 하는데 긴 사장(沙場)이 마을 앞에 있으며, 옛날에는 여우가 많은 갯가였다 하고, 장개뜸이라고도 부른다.

원머리 서쪽에는 안수박골이 있고, 중앙 쪽에 밖수박골이 있으며, 안수박골과 칠성바위 사이에 산이 있는 산을 안산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벼슬길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한가하게 보낼 수 있는 수려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성황당너머에 마을이 있다 해서 당너머라 부르는 곳이 있으며, 옛날에는 칠성바위 마을이 장터였으므로 그 장을 중심으로 해서 부르게 된 마을이다. 마을에 칠성초등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서면초등학교로 통합되어 빈 건물만 남아있다.

원두리 동포 고인돌군은 전 칠성초등학교 자리에서 원두교회 쪽으로 가다가 교회 앞 좌측 육교를 건너가면 박풍화씨 집이 있는데, 그 집 대문 서쪽 면에 있는 고인돌로 일명 거북바위라고 한다.

굄돌이 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며, 전에는 이 부근에 여러 개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경지정리 등으로 매몰되었다고 한다. 지역에 있는 고인돌중 해안에 가장 근접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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