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봉명리(鳳鳴里)
[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봉명리(鳳鳴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1.11.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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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명리는 백제시대 마산현이었고, 신라시대 가림군의 마산현 소속이었으며, 고려시대 임천의 한산현에 속했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 한산군 소속이었고, 조선 말 한산군 남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망천리(輞川里), 신기리(新基里)와 농소리(農所里), 신아리(新芽里), 한암리(鷴岩里), 육원리(陸元里)의 각 일부를 합쳐 봉황산(鳳凰山)과 계명산(鷄鳴山)의 이름을 따서 봉명리라 하여 서천군 화양면에 편입되었다. 계명산에 황새를 닮은 바위가 있어 황새바위라고 하는데, 바위 모양이 논에서 황새가 우렁이를 먹고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신기리는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신기리 또는 새터라 하며, 망천은 절굴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한다. 백제시대 마을 앞 냇물에서 물이 흘러 금강으로 갔다 하는데 이 내를 망천이라 불렀다 하며, 냇가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봉명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새터 동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공수동(公水洞) 또는 작은 망천이라고 하며, 망천 냇가부근에 있는 작은 지역이다. 계명산에서 살포재를 넘어 옥포, 추동리로 가는 고개를 갯고개라고 한다. 

조선 선조 시대 큰 가뭄이 있을 당시 금강 옥포 강변에 해초가 많아서 그 해초로 연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초막을 쳤던 고개라 전한다. 봉명리에는 황서배라는 지역이 있는데, 계명산의 황새바위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망천 뒤에 있는 산은 살포재, 사포티, 효산, 회산 등 이름이 많은 산이다.

노을이 뜰때와 노을이 질 때 절경을 이루는 산이라 조선시대 한산고을에 머무는 선비들이 바다와 육지를 시로 표현할 때 흔히 나오는 절경의 산이다. 망천 남쪽에 외따로 있는 산을 독뫼라 하며, 딴뫼, 독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돈과 재산 모으기에만 급급하던 촌부가 마을에서 인심은 잃었으나 돈이 많아서 돈에 허우적대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시체를 매장하려 할 때 마을 사람들이 승낙해 주지 않고 일을 돌봐주지 않아서 이 산에 묻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계명산에는 쪼개진 것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벼락바위라고 하며, 벼락 맞아서 쪼개졌다고 전해진다.

신기마을에는 효자 이임 경주 이씨 정려비각이 있는데, 효자 이임은 부모가 함께 병환이 나서 30년을 간호했는데, 조금도 게으름이 없이 약과 음식으로 정성을 다 하고 돌아가셔서도 시묘살이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 자부인 처 이씨는 조용하고 어질고 정숙하여 여자의 덕을 갖추는데 손색이 없더니 남편이 죽자 3년 상을 마치고 약을 먹고 남편 뒤를 따랐다 한다.
봉명리에는 화양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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