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천태2리
[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천태2리
  • 투데이충남
  • 승인 2021.11.15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약국집 사람들
몇 년 안된 약장이라고 하지만 50년 이상 묵은 약장이다. 

 천태2리 광오에 거주하고 있는 권환동 씨는 1956년 현재 살고 있는 가옥 옛 터에서 태어났다. 배우자 김연희 씨는 천태리(현 천태1리)에서 1959년에 태어나 스물두 살 되던 해 권환동 씨와 결혼하였다. 현재 살고 있는 가옥은 권환동 씨의 아버지 권흥식(1917~1998) 옹이 별세하기 1년 전인 여든할 살까지 영생당 약방을 운영하던 곳이다.   
  권환동 씨 조부는 목수였다고 하는데 천태리에 처음 터를 잡고 살아 마을을 형성한 시조로 안동 권씨다. 권흥식 옹은 결혼 후 아들 여섯에 딸 둘을 두었다. 자녀 중 큰 아들은 현재 예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넷째인 권환동 씨는 어린 시절 다리에 병을 앓았다. 권환동 씨는 건강을 위해 천태산을 오를 때마다 돌을 하나씩 가지고 올라 산 정상부에 높이 2m가 넘는 돌탑을 세 개 째 쌓으며 삶을 위한 의지를 다진다고 한다. 천태리 토박이 권환동, 김연희 부부가 천태리 주민들에게 권약국집 이라고 불리는 영생당 약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대학교 나와서들 하는데 옛날에는 책 보고 배워서들 한 거예요. 아버님이 홍주한약방(초대원당 리종태 1914~2000)에서 일하다가 배워 30대부터 약방을 하신 거 같아. 아버님 처음에 배우고 그럴 때 예전엔 약 같은 거 쓸 때 자전거 타고 한양 가서 사 오느라 한 닷새 씩 걸렸어요. 그 건재 사러. 자전거 타고 가셔서 자전거에 하나 가득 싣고 서울 가서 약 사가지고 오셨지. 그때는 젊었을 때 시작 할 때고.
  연세 잡수면서 좀 더 간 환자를 잘 봤어. 췌장약 같은 거 그런 거 시골서 약방에 없고 병원에 없응께 배워가주고 그런 걸 하셨어요. 많이 안 져주고 약 두 첩, 세 첩씩. 저 황달 그런 쪽으로 많이 좋아지셨어요. 어떤 양반이 황달로 오셔서 세 첩을 지어드렸는데 다 나았댜. 황달 같은 게 잡숫고 소문이 나가주고 인제 연줄연줄 해가주고. 우리 아버지가 약 져주시면 안 나으신 양반은 읎어.
  약도 많이도 안 져주셨어. 지금들이야 약 많이 먹지만. 거기에서 그 사람덜이 연줄 되 가지고 그랬는데 우째 운대가 맞으려고 그랬는지 암환자가 왔어. 수원, 안성 그쪽에서 많이 왔었어. 8~90년도에. 암 환자 오기 전에도 약에 대해서 유명했었어요. 미국서도 여기 한번 가보라고 해서 전화 오고. 병원서 치료 못한다고 퇴짜 맞은 사람들 여기 와서 거의 다 나았어요. 어떤 사람은 치료 못한다고 가라고 해서 여기 왔는데 약 지어먹고 20년 살았어. 이 사람이 그렇게 살고서 아직도 하냐고 그러고 여길 찾아왔더라고.
  아버님은 약 한번 쓰면 또 안 져줘. 약 세 첩 져주니께 더 달라고 하는데 세 첩이면 낫는데 왜 그러냐고 하셨대. 많이 안 져주시고 딱 나을 만큼만 져줬어. 옛날에는 다 그랬어요. 약 지러 가면 두 첩, 세 첩, 다섯 첩 이렇게 첩으로. 집으로 가서 댈여먹고 시골에선 다 그렇게 했어. 지금이야 한 재로 달여주고 그러지. 근데 지금 사람덜하고 옛날 사람덜하고 대지도 못하지(비교할 수 없지). 약 안 줬어요. 약 안 먹을 사람은 교회대니라 그랬어요. 약 먹지 말고 교회 대니라고. 이제 마음의 병이니 교회 가면 낫는다고 그러고 약 안 줬어요. 그랬더니 난중에 왔데요. 교회 다녔더니 다 나았다고 고맙다고.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셨어요. 그러고 아들 낳는 약도 져 줬어요.
  약장이 지금 있는 건 아주 옛날 건 아니고 예산 형님이 쓰시던 거 가져다 놨어요. 옛날 약장은 옛날 물건 사러대니는 양반덜이 한 50년 전이 와서 날마다 쫓아 대니며 팔아라 팔아라 해서 아버지가 그냥 팔았구. 지금 있는 건 얼마 안 된 거. 큰형님 20대부터 한약방 했으니께 이것도 한 오십 년 넘었을걸요. 큰형님이 지금 80이니께. 옛날 약장은 더 적어요. 속에 칸막이가 세 개 짜리가 있어요. 더 쬐끄만하면서도 칸이 속에가 세 개. 그래야 한 서랍에 약이 세 가지가 들어가지. 이게 칸이 적으니까 그렇게도 하더라고. 약이 300가지가 넘으니께. 글씨가 다 약재 이름이에요.
  이건 약 써는 석도. 저도 옛날에 약재 많이 쓸었슈. 그래서 이게(손가락 끝) 좀 짧어. 약 썰다가 짤라 가지고. 요즘 말로 작두에요. 큰 거는 형님이 20대 때 쓰던 거. 지금 여든이신 게 60년은 됐겠네. 잘 싸놔서 상태가 좋아유. 이거보다 오래된 거는 바깥에 있지 뭐. 할아버지가 대장간 가서 만들어갖고 오셨어. 옛날 거는 오래돼서 다시 맨들은 거여. 이게 약 가는 거야. 쓰시던 거 고대로 있는 거고. 이것도 약 덩어리 갈아서 쓰던 거. 약재로 쓰던 것도 있어요. 거북이 등껍질하고. 100년도 넘었겄네. 옛날에는 그런 거 약국에서 다 썼어요. 이거는 아마 자라 껍질 일 거고 이거는 거북일 거예요. 저울이 있네. 거기다 약 달아서 재가지고 쓰시던 거.
  시골서 약방이 없었으니께 병원도 없응께 배워가주고 그런 걸 하셨어요. 침도 놓고 종기도 째고 이게 응급처치로 꼬매기도 하고. 광산서 다친 사람들. 병원도 없구 교통도 걸어다니자네. 나도 종기 나서 두 번 아부지가 칼로 째가지고 싹 나았지. 옛날에는 종기 같은 것도 많이 앓았잖아. 이런데 막 꼬무럭지 나면 많이 고치고 그러셨데유. 이거 저기 헐 때, 꿰매고 할 적에 쓰시던 거. 옛날에 저기 한약 허가증이에요. 원본은 세무서 갖다 주고 다 복사해 놓은 거야.
  다 약 질 때 쓰던 책이에요. 다 화재 낸 걸 텐디. 병에 따라서 화재 내서 약 짓는 책이에요. 만약에 내가 감기 들었으면 감기약을 지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그 병에 대해서 약 재료 뭐 집어넣는 거 그걸 쓰는 거야. 환자 이름도 써 있고 나이도 써 있고. 병원 가면 약 처방하듯이 그런 식으루 종이에다 써 놓으면 그거 보고서 저 손님이 다음에 왔을 때 안 나았으면 뭐 딴 걸 더 넣고 덜 넣고 그랬어요. 이건 붓통. 그 종이에다가 병에 대해서 화재 쓰실 때 먹 갈아가지고 쓰시던 붓이에요. 이 책은 약 짓는 책이고. 또 이건 다 쓰여있네. 이름, 가격, 의정부, 수원, 서울, 용인, 화성, 인천, 안산 뭐 많이 왔네.
  이게 우리 아버님 약 지실 때 사진이네요. 이건 집 짓기 전에 옛날 집이서 찍은 거네. 집 짓구선 서서 의자 놓고 지셨는데 그냥 철푸덕이 앉으셔서 약 진거 보니께 옛날 집이서. 지금 살아계시면 100세가 넘으셨을 테고 요 때가 70대 시절이에요.
  권환동, 김연희 부부의 집에는 20년 전까지 유명했던 영생당약방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영생당약방 이야기를 통해 민중들의 마음과 몸을 돌보고 치유하던 의술의 모습을 만나보았다.

100년 이상 된 거북이와 자라  등껍질.
100년 이상 된 거북이와 자라 등껍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