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마을이야기] 장곡면 화계1리
[홍성군마을이야기] 장곡면 화계1리
  • 임미성 기자
  • 승인 2021.10.31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것의 가치를 잇는다 (2)

  올해도 내년도, 화계1리 가양주
  이태숙 님 댁에 들어선 순간 새콤한 발효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톡톡 터지는 효모균이 마치 손에 잡힐 것 같다. 거실 문간에는 커다란 붉은 고무 대야 3개가 우람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집집마다 빚어 마셨다는 가양주를 화계1리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때마침 설을 앞두고 제사상에 올릴 술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태숙 님 댁에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술맛을 지금부터 전해본다.
  자연과 더불어 계절에 따라 농사짓고 술을 빚던 옛 시절. 절기마다 제철 재료를 넣어 술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즐거움을 나누며 힘을 얻었다. 요즘엔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차와 다과를 내놓지만 예전에는 그 집에서 빚은 술과 안주를 내오는 것이 예절이었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고 결혼식을 올릴 때도 술이 빠진 관혼상제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각 가정에서는 일 년 내내 철 따라 술을 빚고 마시며 살아왔다. 가양주는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우리의 문화였다.
  지역과 가문, 빚는 사람에 따라 집집마다 다른 맛과 향기를 내던 가양주는 일제 강점기 양조 허가제로 바뀌면서 개인이 술을 빚을 수 없게 되는 위기를 맞는다. 식량 공출을 위해 쌀로 술 빚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기 시작하였고 1965년 박정희 대통령 통치 시절에는 식량난을 이유로 쌀을 이용해 술 빚는 것을 금지하였다. 1973년에는 강력한 주류 업체 통폐합 정책을 실시하며 가양주는 명맥이 사라지고 주류 사업도 일원화되었다. 당시 술 조사를 받던 마을 풍경을 이태숙 님이 전한다.
  “술 조사 나와서 이거 하면(술 빚으면) 걸리고 그랬잖아요 요새는 걸리는 거 없고. 옛날에는 막 퇴비장 같은데 거기다 묻어놓고, 산에다가 놓고 속까지 덮어놓고 그랬어요. 그거 한번 들키면 벌금이 많이 나왔어요. 장곡에 양조장이 있었는데 어느 집에 행사가 있는데 술이 안 나간다, 그러면 술 조사를 내보냈어요. 그런데 우리 부락만 계속 오는 거예요 단속이.”
  ​엄격한 술 단속 중에도 매년 빚어 내려온 이태숙님 댁 술은 어떤 맛일까? 맛을 보니 톡톡 터지는 효모균과 맑은 술기운이 도는 처음 맛보는 술이었다. 술의 종류는 동동주다.
  “이 술은 변하지도 않아요. 맛도 좋고 금방 취하는 것 같아도 금방 깨요. 속 아프고 머리 아프고 그런 것도 없고 양주보다도 이게 더 좋아요. 근데 이 술은 진짜 명절 부침개랑 더 잘 어울려요.”
  이태숙 님은 추석을 앞둔 여름과 설을 앞둔 겨울 1년에 두 번씩 술을 빚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저희는 술 잘 안 먹어요. 차례상에만 올리고 나머지는 다 선물해요. 제사 지낼 때 쓰라고 마을에 한 병씩 돌려요. 명절 때 뭐 줄 것도 없잖아요. 제주차례주 하라고 선물하면 집집마다 식구들 오고 사람들 와서 처음 이런 거 마셔볼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제사 지내고 마시라고 한 병씩 드리고 있어요.”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전통 차례주는 청주다. 차례주로 사용하기 위해 대대로 빚어 온 이태숙님 댁 동동주는 마셔보니 밥알이 동동 뜨지 않아 청주처럼 맑았다.
  제사상에 보통 정종을 올린다. 정종은 일제강점기 식량 공출과 우리 문화 말살 정책으로 가양주가 전면 금지 된 후 일본 ‘마사무네'사의 청주사케 ‘정종’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우리 생활에 스며든 것이다. 화계1리 각 가정의 명절 차례상에는 정종을 제치고 이태숙 님 댁 노란 빛깔의 동동주가 제주로 부어지고 있다. 2019년 설을 앞둔 화계1리 사람들 손마다 들린 동동주 술병이 정말 특별하다. 
술 가를 때가 되었다. 다음날 용수를 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용수란 무엇일까? 용수 박는 광경을 보기 위해 다시 이태숙 님 댁을 찾았다.
  “술이 약간 올라오기 시작하면은 이렇게 갈라서 용수를 받고 다 해야 돼요. 술 떠내기 위해 하는 과정, 이대로 뜨면 위에 찌꺼기가 있어서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용수를 잘 넣으면 이제 맑은 술이 고여요. 용수를 넣을 때가 참, 이게 어떻게 들어가는지에 따라서 술이 잘 됐는지 알 수 있어요. 위에를 갈라서 용수를 넣을 때 그 느낌이 있어요. 아 이번엔 술이 잘 됐구나. 아이고 이번에 뭐가 잘 안됐구나 이렇게. 이게 용수, 밑에 있는 건 용발이라는 거.”
용수는 술을 뜰 때, 용발은 뜬 술을 한 번 더 체에 걸러 담을 때 사용한다.
  “처음엔 용수를 박을 때 짚을 깔고 이렇게 해갔고 여기 눌르면 가라앉아요. 처음엔 이만큼 올라왔다가 이게 점점 가라앉아서. 이제 맑은 술이 이렇게 고이면 떠가지고 체에다 부어요. 술 점점 퍼내면 양이 줄어요. 고여지면은 퍼내고 더 이상 안 고여지면 버려요. 이건 한 이틀 했어요. 다 퍼내서 버릴 거예요. 이제 술 거른 거는 (침전물이) 가라앉아야 돼요. 지금 뽀얗잖아요. 그런데 이게 가라앉고 한 24시간 지나서 이런 빛이 돋으면 이제 병에다 담죠.”
  용수에 고인 술을 용발 위에 걸친 체에 걸러 병에 담는데 이번에 담근 술은 2L들이 생수병으로 100병이 나왔다.
술을 담그는 데 누룩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술을 담그면서 가장 힘든 과정은 의외로 누룩을 손질하는 일이라고 한다. 누룩은 발로 꼭꼭 밟아 만들어지는데 매우 단단하다. 마당에는 사람 등짝 만한 누룩 12장이 보관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쌀 80KG에 누룩이 40KG 이렇게 들어갔어요. 술은 이 누룩이 힘들어요. 겨울에는 밖에서 누룩을 돌로 두들겨서 잘게 부숴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들어요. ”
깊은 고무 대야에 맞는 용수는 수덕사에서 구매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손으로 만들어 썼다고 한다. 지금은 만드는 사람이 없고 수덕사에 가면 살 수 있다. 용발은 솜씨 좋은 시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을 대물림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거를 다 만드셨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 초가집 위에 보면 용마루 있잖아요. 그거 기술자였었데요. 다른 마을에도 가서 짜가지고 직접 지붕 씌우고 그랬데요. 솜씨가 그렇게 좋으셨데요. 용수 저희 어머님이 쓰시던거 드려볼까요? 오래돼서 다 헤어진 거. 이게 대나무로 다 갈라 가주구 이렇게 엮어서 만든데요 소쿠리마냥. 옛날 거는 요만해요. 술독마다 들어가야 하니까 용수를 박으면 뺏다 넣었다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여러 개가 있어요. 제일 오래된 게 장독 있는데 있어요.”
  장독 옆 창고에 보관 중인 가장 오래된 용수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이 용수는 시할머니 대부 터 사용하던 것으로 삭아서 떨어진 윗부분을 실로 엮어서 사용하였다. 지금 사용하는 용수는 옛 용수에 비하면 2배 정도는 더 커 보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술 검사 걱정 없이 술을 담그는 시대가 되었다. 용수의 크기는 커졌고 이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다. 그리고 모두와 함께 나눈다. 온고지신, 옛 것을 이어가며 더 풍성한 오늘을 사는 향기로운 화계1리의 가양주를 만나보았다.

부엌 안의 창고에는 시할아버님이 만든 용발과 용수가 보관중이다.
부엌 안의 창고에는 시할아버님이 만든 용발과 용수가 보관중이다.

[출처]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블로그|작성자 홍성군 청년마을조사단(이은정,주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