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65회/ 10장 체포영장에 대응하는 법 (2)
[연재소설 19로탄]65회/ 10장 체포영장에 대응하는 법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7.0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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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은 성군 세종의 악마역으로 최만리를 찍은 계기는 세종실록 26년 2월2일자를 보고 나서다. 그날 최만리는 집현전 학사들의 의견을 모아 대표자로 상소를 올린다(독자들도 조선실록 사이트로 접속해 보시기 바란다. 그곳에서 독자들의 역사적 궁금점을 해결하시라. 이제 허접(?)한 역사학자들의 강압적이고 기만적인 역사해석에서 독자들도 해방될 때가 되었다. ^^) 이날 최만리는 상소에서 한글창제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사업이 천고에 다시 없고 신묘하다 찬탄을 한다.

다만 최만리(집현전 학사들의 공론)는 한글이 창제된 지 얼마되지 않아 운문 번역 사업에 나서는 것은 지나치게 빠른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시한다. 자칫 문자 생활이 한문과 언문으로 양분되어 큰 혼란이 올 수 있음을 경고(?) 하는 정도다. 국정의 책임 있는 관원으로 국가의 중차대한 사업의 실행에 이 정도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뜻과 의미가 아무리 좋은 사업도 실행 후 많은 문제점을 보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진실은 이것이다. 세종의 한글 헌창 사업에 눈이 멀었던 김윤경은 이 기록을 근거로 최만리를 못말리는 사대주의자이자 민족 반역자로 낙인을 찍어 선과 악의 대비 구조를 만든다. 사실 최만리는 세종의 아낌 없는 지음을 받은 신하다. 최만리는 관직생활 대부분을 세종의 지근에서 보낸 사람이다.

김윤경이 만든 이 틀은 당시 사회기풍의 광풍(?)을 타고 최만리는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매국노가 된 것이다. 이 발언의 심각성을 파악한 학자 이병도나 이숭녕 등이 제동을 걸었으나 한번 발동된 광풍을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한글을 언문(諺文)이라 한 분도 세종임금이다. 세종은 언문을 창제하고 '언문청'을 설치했다. 한글을 언문이라 한다고 비하(?)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때 김산의 손전화에 문자가 떴다.

- 나 형사들과 인천으로 가고 있어. 어떡해?.

"뭐야? 이건..."

김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지옥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럼 박형사가?"

김형사는 박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도 전화를 받지 않고 부재중 메시지만 떴다.

"이럴 때가 아냐. 인천으로 가야겠어."

김산은 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도윤은 도서관에 간 모양이었다. 김산은 도윤에게 외출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무슨 일이지? 혹시 지난번 협조를 하지 않았다고 이런 일을 벌린 거야?"

김산은 박형사의 능글맞은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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