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57회/ 9장 북관의 자객 (1)
[연재소설 19로탄]57회/ 9장 북관의 자객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6.28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관의 겨울바람은 조선팔도에서 유명한 것이었다. 동해에서 백두대간을 향해 몰아치는 해풍은 차가웠고 그 바람이 깊은 산 그늘 속을 돌아 쏟아져 나오는 골바람은 산짐승의 살가죽을 찢고 사람의 얼굴피부를 얼릴 정도로 예리했다.

휘잉.

휘이~잉.

바람이 문풍지를 잡고 문짝을 뒤흔들었다. 바람소리가 문짝을 정면으로 치면 곤장으로 볼기짝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형님, 이게 전하께서 써주신 어필이란 말입니까?"

양천봉이 바둑판을 쓰다듬으며 김려에게 말했다.

"맞네. 전하의 어필일쎄."

"오, 명필이시군요?"

"암, 명필이시지."

"그런데 전하의 말투가 거칠다면서요?"

양천봉은 무엇인가 들은 바가 있는 듯 물었다. 두 사람은 한방에서 자다 일어나 바둑판을 앞에 놓고 대화중이었다. 아직 숙취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조금 거칠긴 하시지."

"왈짜들 말투 못지 않으시다면서요? 그 말이 사실일까요?"

양천봉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조선인은 누구라도 함부로 군왕을 입에 담으면 안되는 것이 법이었다.

"맞아. 내가 본 전하의 말투는 그랬네."

김려는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려는 18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북관으로 유배를 올 때까지 수십번 국왕을 대면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곧 정답인 것이다.

"아... 정말요? "

양천봉은 일국의 국왕의 말투가 검계의 왈짜들과 비슷하다는 말에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조는 다혈질에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더해서 말투는 결코 곱지 않았다.

조선실록, 홍제전서, 정조어찰집, 간찰 등 수많은 정조자료 속에 이런 모습은 흔하게 나온다. 꼭 특정해서 찾을 일도 아니다.

어떤 놈이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황인기, 김이수)

호로자식이다(서용보)

경망 없고 늙은 놈(심환지)

서용보의 의붓자식이다(정상우)

입에서 젖비린내 나는 놈(김매순)

근래 날뛰는 것이 웃긴다(김매순)

감히 선배들의 놀음에 주둥아리를 놀린다(김이영)

뜬금 없는 인사(박제가)

오만 잘난척 하는 놈(박지원)

정조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정조 스스로도 그 점을 여러번 토로한 적이 있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는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정조에게서 상말을 얻어 들은 사람들의 면모가 화려하다. 모두 정승의 반열에 있거나 명사들이다. 그중 당대에 고상하기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김매순(金邁淳 1776-1840)에 대한 언급은 압권이다.

'입에서 젖비린내 나는 몸이 날뛰는 꼴이 웃긴다."

왕조국가에서 군왕에게 이런 말을 듣고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매순은 이런 말을 들을 입장(?)도 아니었다. 정조에 대한 충언을 하다가 들은 말이었다. 수원 화성에 대한 지난친 국력 낭비 등을 지적한 올곧은 선비에 대한 정조의 일갈은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 하더라도 정도가 심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