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55회/ 8장 홍두인(洪頭人) (6)
[연재소설 19로탄]55회/ 8장 홍두인(洪頭人) (6)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6.24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문(漢文)을 말하다 보면 고조선에 신대문자가 있었고 한문도 동이족이 만들었으니 우리 문자라고 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논리는 약소하나 정신만큼은 너무도 용감무쌍하여 대응도 쉽지 않다. 한반도의 한문유입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삼국시대에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음이 확인된다.

삼국사기 372년조에 고구려에 '태학' 이 있었고 유학이 흥기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시에 벽항궁촌(僻港窮村)하고 경당습경사(경堂習經射)라는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골 어촌과 궁벽진 시골까지 경당을 설치하여 경전과 활쏘기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 표기방법이 순한문과 국어식 한문의 혼용이다. 당시 한반도에 일종의 한반도화된 한문표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광개토왕비문이나 백제 개로왕시대 위나라에 보낸 표문 등은 순한문식 표기로 명문장으로 꼽힌다. 당대의 한문의 운용 수준의 반영인 것이다. 동시에 백제 무령왕비인 은훈명(銀訓銘)은 순한문과 국어식 한문의 혼용으로 이 시대 한반도의 한문의 활용성을 엿보게 된다.

김산은 대전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56자의 한문 문장을 풀었다. 천원점에서부터 달팽이 구조로 쓴 7언 절구였다. 밑도 끝도 없는 한문 해독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자였으나 달팽이 구조 형식의 암문(暗文)임을 알고 나면 너무도 쉬운 한편의 시(詩)였다.

나의 집에 좋은 나무로 만든 바둑판이 있네

옛말에 이보다 좋은 놀이 없다 했네

그때 우리는 약조했었지 않나

군신이 함께 벗하여 살자고

내가 붓을 들면 그대가 운자를 놓으며

한 평생 글 농사 지으며 (살고)지자고.

- 정조

"아!"

김산은 찬탄 절로 나왔다. 과연 학군이며 명명문장인 정조임금다웠다.

"아가선문위기반(我家善木圍碁盤) 고세고론여풍미(古歲高論勵風味)...."

김산은 문장을 읊조리며 거듭 무릎을 쳤다. 복잡하고 괴기한 암호문의 첫 글자의 실마리를 잡자 '자신의 방에 좋은 바둑판 있으니 군신이 바둑을 두고 때로는 글을 지으며 농군이 농사를 짓듯 함께 하자'는 간결하고 정감이 있는 풍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때 손전화가 왔다. 박형사였다.

"좀 뵈어야 하겠는데요?"

"......?"

"나 지금 서울인데요. 오후에 시간 되죠?"

박형사는 자신의 용건만 말한 후 약속을 재촉했다. 일방적이었다.

"저..."

"오후 2시쯤이 좋겠네요. 고속버스터미널 근방에서 뵙죠."

김산은 순간적으로 형사라는 직업도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