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 41회/ 6장 미망의 시간 (6)
[연재소설 19로탄] 41회/ 6장 미망의 시간 (6)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6.06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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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는 정조가 '두서가 없는 인사'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다소 부산하고 기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북학의 서문을 써준 '서명선(徐明善)'은 박제가를 기남자(奇男子)라 평가하며 정조의 인물평에 동조를 한다. 박제가는 박지원에게도 부탁을 하여 서문을 받은 바 있다. 박제가는 당시의 시대의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이었다. 박제가는 조선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들어내는 곳에서 '조선이 사는 법'을 찾는다. 박제가가 본 조선의 문제는 가난이었다.

1897년 박제가가 정조에게 북학의를 올릴 때 조선의 현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조선백성들의 반수는 하루 한 끼니로 연명을 하고 그중 반은 굶는 정도가 아닌, 아사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정도였다. 박제가는 이 현실을 기탄없이 말한다.

방안에 덮을 이불 한 채 없고, 부엌에 밥을 끓일 솥이 없어 깨진 사기그릇에 밥을 담고 나무젓가락으로 반찬을 먹는 지경이란 것이다. 박제가는 이 원인을 과도한 세금과 관리들의 수탈로 보지만 그것보다는 빈약한 조선의 산업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진단을 한다. 박제가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사치(?)를 막지 말고 권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들이 돈을 풀어 이것저것을 마구 사들여야 그 돈이 돌고 돌아 가난한 백성들까지 전달된다고 한다.

도로를 건설하고 수레를 만들고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는 것이 실천방안 중 하나라고 한다.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다. 중국은 이미 오랑캐도 원수도 아닌 문물이 성한 선진국이니 그곳에서 좋은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한다. 할수만 있다면 조선말도 중국어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못할 것이 뭐냐 묻기도 한다. 하늘천(天)을 '천'으로 읽는 우리, '텬'으로 읽어 중국과 소통치 못하는 비합리를 시정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 묻는 단계까지 나간다.

박제가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다. 조선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문제로 가난을 들고 극복방안으로 사치(?)를 권장하는 방법은 기발하다. 소비를 통해 생산과 파급 유도라는 경제학이론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사치는 죄악이라는 유학의 맹목적 덕목 아래서 박제가의 주장은 광인취급을 받고 만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조선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못쓸 것도 없다는 발언은 침소봉대되어 끝내 박제가를 귀양까지가게 된다.

박지원, 박제가의 나라발전 방안을 받은 정조는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끝이다. 정조는 어쩔 수 없는 유학 이념의 신봉자이자 경호원이었다. 나라발전도 어디까지나 유학의 범주 안에서 입안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정조에게 박지원이나 박제가가 아무리 당대의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조가 박지원 박제가에게 해준 것은 지방 사또자리 한두 곳을 정해주어 살림을 돌봐준 정도였다. 김산은 '북학의'를 묻는 학생에게 답장메일을 보낸다.

-훌룡한 작품이란 무엇인가? 학생은 북학의가 훌룡한 책이기를 바라고 질문을 했나? 그것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김산은 자신의 방을 나와 '도인'의 방앞으로 가 문을 살짝 열어본다. 방안에는 한손에 월간바둑을 들고 바둑판 위에 기보를 놓아 보고 있는 '도인'의 얼굴이 보인다. 삼파장 램프등이 19로 바둑판을 비추고 있다. 그 위에 무대 위마냥 흑백돌이 어지럽게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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