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36회/ 6장 미망의 시간 (1)
[연재소설 19로탄]36회/ 6장 미망의 시간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5.27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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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환지가 정약용을 못죽여 안달했다는데 그 말이 맞나요?"

"뭐라고?"

"심환지가 정약용을 탄압한 거 틀린 거 아니죠?"

심환지를 연구해 오라는 지난 시간의 과제에 학생들은 이런 질문을 답으로 내 놓는다.

"근거가 있나?"

"근거요?"

"그래 근거? 명색이 역사학도의 질문이라면 어떤 근거가 있을 거 아닌가?"

김산은 근거를 묻는다. 역사는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여 기록이 없는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다.

"그건 딱히..."

"심환지가 정약용을 못잡아 먹어 안달했던 것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심환지가 정조에게 큰 인물이니 크게 써라 한 말은 알고 있다."

"네? 누가요?"

"심환지가 정조에게 정약용이 큰 인물이니 크게 써라 한 적은 있다 이 말이다."

순간 학생들은 침묵에 빠진다. 하지만 이 말은 역사의 팩트(사실)다.

1791년 11월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사형을 당한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가 아는 '진산사건'이다. 충청도 진산에 살던 유생 윤지충과 권상연이 부모의 신위를 불 태우고 천주교식으로 제사를 지낸 이 사건은 조선을 들었다 놓는다.

정약용이 인생의 풍파를 겪은 것도 사실 이 사건이 시발이다. 윤지충에게 처음 서학을 소개해 준 사람이 다산 정약용이었다. 정약용은 '이벽'에게 천주교 교리를 받아들여 집안 촌수로 육촌형제인 윤지충에게 전도(?)를 했는데 그만 윤지충의 믿음이 너무 강해 사단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정약용은 지방으로 좌천된다. 그리고 서학혐의자란 꼬리표를 평생 달게 된다.

정약용은 서학에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를 친형으로 둔 사람이다. 정약용의 이런 가족적 배경은 서학을 발본하려는 조선의 정책과  맞지 않았고 정약용의 최대 약점이 된다. 물론 정약용은 한사코 천주교인임을 부인 한다. 단순 호기심에서 살펴 본 것일 뿐 자신은 절대 서학쟁이가 아니라는 변호로 서학혐의를 벗고 있었고 그를 아끼는 정조의 비호로 위태위태하게 벼슬에서 버틸 수 있었다. 정약용은 충청도 청양땅에 있는 금정찰방으로 근무할 때 호서의 사도로 불리던 이 지역의 서학의 거물인 '이존창'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린다. 정조는 이 사건을 빌미로 정약용의 굴레였던 서학혐의를 깨끗하게 씻어준다. 이 일을 심환지에게 상의하자 심환지는 이렇게 말한다.

"큰 인물이니 크게 쓰십시요.'

우리는 이 사건에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윤지충사건의 심문관 정민시(鄭民始, 1745-1800)다. 정민시는 정조가 측신으로 키운 '시파'의 핵심 인물로 정조의 역사사업에 몸과 마음을 헌신한 인물이다. 정민시는 윤지충 권상연을 추상같이 다뤄 참수를 이끌어낸다. 정민시는 서학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던 정조의 바람과는 달리 전광석화로 이 일을 매듭 짓는다. 한마디로 법대로다. 정민시의 법대로를 반복한 사람이 '정순왕후'다. 정조사후 조선의 천주교인들 수만을 도륙한 정순왕후에게 정민시도 삭탈관직 후 유배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심환지가 정약용은 비호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다. 역사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역사를 선악의 대비로 보지 마라. 역사를 니편 내편으로 보는 순간 죽도 밥도 안된다."

"그럼 심환지가 좋은 사람이란 건가요?"

학생 하나가 묻는다.

"그럼 학생은 심환지가 나쁜 사람이기를 바라나?"

"와하하하."

김산의 반문에 학생들이 모두 웃는다.

"자, 생각해 보자. 심환지와 정약용은 삼십년 나이 차가 난다. 벼슬자리나 정치영향력은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왜 심환지가 정약용을 못죽여 안달할 이유가 있을까? 의심하지 않는 한 여러분은 진정한 역사학도나 학자가 될 수 없다. 의심하지 않는 역사읽기는 그저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울분하며 박수나 치는 관객에 불과하다."

김산은 수업을 마친 후 휴게실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문다. 그리고 시계를 본다. 그리고 독백을 한다. 도인이는 지금쯤 수업이 끝났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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