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31회/ 5장 하늘이 내린 건달 양천봉 (3)
[연재소설 19로탄]31회/ 5장 하늘이 내린 건달 양천봉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5.20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백의 맑은 정기 서기로 내려왔더냐

이천년 오랜 정령 네 몸에 모였구나.

연아 연아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어찌 이 시골에서 속절없이 늙느냐.

-김려

김명세의 패악질은 끝이 없었다. 세숫물을 모아 놓을 항아리 하나가 없어 앞냇가로 가 얼음을 깨고 세수를 하고 와 보면 방안은 온통 난장판이기 일쑤였다. 그 틈을 이용하여 김명세가 들어와 뒤져 놓은 것이었다.

"얼어뒤지면 내가 책임이라이. 뒷산에서 삭쟁이 몇개 주워다 때고, 먹거리는 시장에 가 사먹던지 얻어먹던지 하라이 알간?"

김명세가 방안을 뒤짚어 놓은 것이 조금 뭐한 듯 김려를 보자 검은 이빨을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이게 매번 뭔 짓인가?"

김려가 항의를 해 보지만 꿈쩍할 김명세가 아니었다.

"니놈이 다른 역도들과 내통하는 것을 기찰하는 것은 나의 일이지비. 안 그럼메?"

"그래도 이건?"

흐흐 니놈은 여환이야. 알간? 여환..."

"뭐라고 여환?'

"맞다이. 부처는 가고 미륵이 온다던 그 여환. 흐흐..."

김명세는 김려의 어깨를 툭 치고 방을 나갔다. 출근이었다.

여환은 조선후기 가장 유명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경기도 양주 포천 일원에서 미륵출현이란 종교적 유언비어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반역을 도모하다 죽은 인물로 조선에서는 가장 희극적인 역사적 인물 중 한명이기도 하다. 일종의 휴거 원조라 할 수도 있다. '추안급국안'에 생생한 기록이 있다. 추안급국안은 조선의 중요 사건 신문기록이다.

-석가가 가고 미륵이 온다. 7월28일부터 비가 내려 한양이 잠길 정도로 올 것이다. 우리는 군대를 몰아 무인지경인 도성에 입성한다. 8월초에서 늦어도 10월 안에 일어난다. 우리는 군장과 군복등을 준비해야 한다. (釋迦盡彌勒出二十八始雨至每日大注國家當傾 五輩長驅入城始入無人之傾 之期八月初一一退則十月而軍帳服色亦不可不預備是之說不出於)

-추안급국안 여환일당의 진술.

"나으리...?"

위서방이 말했다. 날마다 김명세에게 당하는 주인 보기가 민방한 모양이었다.

"방이나 치우게."

김려는 뒷짐을 지고 먼산을 바라보았다. 무기력했다. 국법의 엄중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여환'과 비교되며 김명세와 같은 무뢰배에게 당하는 굴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으리 양기위라 하던군요. 천영루에 자주 온다고 하데요."

양천봉은 부령에서 양기위(梁旗衛)로 통했다. 오군영의 장교를 지냈기 때문이었다.

"천영루는 기방이겠지?"

"네. 소인이 한번 가볼까요?'

"허 그것 참..."

김려는 위서방의 말에 가타부타 답을 할 수 없었다. 체면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 궁벽한 곳에서 당하는 자신의 모습은 체면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조선의 양반사대부는 유배지에서도 어느 정도 힘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본인은 죄를 받았다지만 역적죄가 아니라면 주변의 배경이 큰힘이 되기 때문에 지역의 관장이나 무뢰배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김려는 역적죄도 아니면서 모욕을 당하고 있었다.

"서찰을 그 사람에게 전하게."

김려는 짐 봇짐에서 서찰을 꺼내 위서방에게 주었다. 쥐새끼 같은 김명세도 발견치 못한 서찰이었다.

"나으리 바람같이 다녀오겠네요."

위서방이 서찰을 받아들고 나는 듯 달려갔다. 김려는 그런 위서방이 고맙고 든든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