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148회/ 13장 사화일록(使和日錄) (4)
[연재소설 벽상검] 148회/ 13장 사화일록(使和日錄)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3.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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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의 만남은 정치적인 것이었지만 지인지감이 통한 두 사람은 서로간의 인연을 필연적인 우정으로 키워 나간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에피소드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팩트로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한줌에 불과하고 그것도 6-70년대 작가나 기자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들은 풍월(?)에 근거해 기록한 내용들이 가지를 키우며 불완전한 에피소드를 양산한 것뿐이다.

'부목반'이라는 물에 뜬다는 바둑판이나 당대의 일본 기단이 양분될 정도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수영'과 '슈코'를 화해시켰다던지 하는 말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근거도 출처도 없는 팩트 없는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들은 때로 책임있는 중앙일간지의 문화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은 김옥균이 오가사와라 섬으로 유배를 가기 전 동경의 한 여관에서 이틀 밤을 보낸 적이 있다. 수영이 김옥균의 호송책임을 맡은 경시청에 선을 대 마련한 자리였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다. 이틀 밤이면 의기가 통하고 지인지감을 나눈 헌헌대장부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날 이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역사를 쓰며 추측을 한다는 것은 헛꿈에 불과하다. 부족한 기록의 행간을 작가의 상상으로 채운다는 말은 헛꿈보다도 못하다. 하여 역사소설은 진정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계가 있다.

- 수영과 고균이 이틀 밤을 여관에서 보냈다. 옥균을 계속 관찰했다.

이 자료는 일본 내각조사실에 보고된 경시청의 자료다. 일본 본토에서 수천 리나 떨어진 오가사와라 섬까지 찾아왔던 본인방수영이 김옥균이 동경을 떠나기 직전에도 함께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이 기록은 필자가 조선총독부 자료들을 열람하다 본 것이다. 필자가 일본어에 밝지는 못하지만 위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자료는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이 우정의 깊이를 보충해줄 근거다. 근거는 이해상반 없는 제3자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을 때 근거가 된다. 모쪼록 다시 김옥균과 바둑 그리고 본인방수영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경찰이 김옥균을 계속 감시 감찰한 이유는 조선조정이 파견하는 자객들 때문이다. 조선조정은 갑신정변 후 일본에 망명한 일단의 망명객들의 송환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자 계속 자객을 보낸다. 우종선, 이일식등 자객들은 동경에 진을 치고 일본내각을 자극했고 일본내각은 경찰과 현양사 등을 통해 그들의 신변보호에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김옥균과 본인방수영이 이토록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가 바둑이다. 김옥균이 한참 후배인 수영을 전폭적으로 끌어안은 이유는 바둑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김옥균은 재주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김옥균은 만가지 재주 중에 바둑이 으뜸이다 말한 바 있다. 그런 김옥균에게 본인방수영은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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