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146회/ 13장 사화일록(使和日錄) (2)
[연재소설 벽상검] 146회/ 13장 사화일록(使和日錄)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3.2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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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는 자순(子純)이란 호를 사용했고 말년에는 현현거사(玄玄居士)라는 호를 즐겨 사용했다. 그는 반남박씨로 수원이 고향이며 12세에 철종의 부마로 낙점되어 결혼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공주인 아내가 죽은 상처도 있는 사람이었다. 조선왕실은 이 일로 박영효를 끔찍히(?)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고종은 철종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에 박영효와는 처남 매부지간이었다. 이 덕에 박영효는 출세의 길이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된 처지에 있었다. 박영효는 역사에서 갑신정변의 주도자로, 또 우리나라 최초로 국기를 태극기로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훨씬 복잡하고 잡다한 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대역죄인으로 낙인찍혀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1894년 사면되어 국내로 들어온 후 김홍집 내각의 대신으로 활동했고 훗날 이완용내각의 대신으로 활동하는 등 친일파 행적이 적나라하다. 한일합방 뒤 일본정부로부터 '자작' 칭호를 받기도 했고 조선은행 이사를 거쳐 동아일보 초대 사장을 하는 등 그는 조선인으로 최대의 귀족생활을 누렸다.

동아일보가 창간 당시부터 바둑에 대한 관심을 두고 바둑기사를 싣는 한편 바둑인들을 우대하고 바둑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보여준 계기도 초대 사장과 이사들이 바둑인(?)인 영향도 있다 하겠다.

박영효는 일본귀족원 의원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며 죽는 순간까지 친일행적을 떨쳐내지 못하는 비운(?)의 생의 소유자다. 어쨌든 1882년 박영효의 일본 출장길에서 후쿠자와유키치와 교분을 텄고 이 교우과정에 김옥균과 '본인방 수영'이 만나는 계기가 된다.

부사 김만식 종사관 사광범 민영익 김옥균(副使 金晩植, 從事官 徐範錫·閔泳翊·金玉均) 등은 연료관(延遼館)에서 일본국 고관과 주일 각국공사를 초대하여 천추절축하연(日本國 高官과 駐日 各國公使를 招待하여 千秋節祝賀宴)을 열다.


- 使和記略 10月 3日.

이 축하연이 작파한 후 박영효를 찾아온 후쿠자와 일행 속에는 어린 바둑천재 본인방 수영이 끼어 있었고 조선사람 중 바둑의 고수인 김옥균은 본인방 수영에게 흠뻑 빠진다. 김옥균과 본인방 수영의 최초 만남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독자들도 벽상검에서 처음 이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많았다. 그러나 바둑에서는 망년(忘年)이 허용되는 덕에 이 두 사람은 서로간에 스승과 제자로 그리고 수담친구로 십년의 돈돈한 우정을 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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