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143회/ 12장 유소사(兪召史) (11)
[연재소설 벽상검] 143회/ 12장 유소사(兪召史) (11)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3.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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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격동기에는 자객들의 천국이었다. 출세를 노리는 혈기방장한 인물들은 모두 자객을 꿈꾸었다. 홍종우가 일본 프랑스 등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자객의 길을 좇은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 홍종우를 직접 보지 못한 필자는 이 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진진한 역사탐구자 이규태의 상상력이 가미된 역사 기술 속에서 단초를 찾아본다.

일본-프랑스 유랑에서 출세의 끄나풀을 잡을 수 없었던 홍종우는 서울에 돌아와 진고개에 사는 옛 친구 김응식을 찾아간다. 그가 모시고 있는 상전이 민씨 세도의 유력자였다. 급변하는 세상 이야기를 미끼로 고종 알현을 부탁하려는 저의에서였다. 뜻이 이뤄져 두 차례 알현한 자리에서 임금은 홍종우에게 일본 망명 중인 박영효와 김옥균 소식을 물었다.

홍종우는 "일본 정부가 역적 다루기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했다. 이에 임금은 남달리 신임했던 김옥균한테 배신당한 일을 언급하더니 "형가의 고사를 아는가"고 물으셨다. 노렸던 기회가 왔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에게 발탁되어 진시황을 해치우려던 자객이다. 그리고 은근히 외아문의 독판 벼슬을 암시했다.

'외부대신이라는 눈부신 자리'를 뇌까리며 홍종우는 '성지를 어기는 일은 없사올 것입니다'고 서약하고 물러 나왔다. 정상적으로 출세하려면 진사 생원을 거쳐 대과에 급제해야 한다. 그러고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성이 아니거나, 조상에 벼슬한 사람이 없거나, 조정에 밀어줄 친지가 없으면 임용도 승진도 바랄 수가 없었다. 난세가 되면 이 정식 경로 아닌 변칙 경로가 형성되게 마련인데, 한말에는 세 갈래로 변칙적 출셋길이 틔었고 출세로부터 소외 당했던 상민들이 이 세 길로 밀어닥친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외척인 민씨 세도에 들러붙는 일이요, 둘째가 민 황후가 배경에 도사린 무당 파워에 아부하는 일이었다. 임오군란-갑신정변-을미사변 등 잇따른 대역 사건에서 망명객이 많이 생기고 이에 대한 왕실의 음성적 보복 의지가 나머지 다른 한 출셋길을 터놓는다. 망명 인사를 암살하면 그 대가로 벼락 출세가 보장되었으며 그로써 한말에 자객 인맥이 형성된 것이다.

홍종우도 그 전형적 인물이다. 우두를 도입한 지석영의 형인 지운영도 민황후 친정아버지인 여흥부원군의 비문을 쓴 것이 인연이 되어 민씨 가문과 알게 되었으며, 그런 연고로 자객의 밀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갔다가 그 기밀이 누설되어 압송된 몸이 되었다. 분개한 나머지 김옥균의 죄를 나열한 글을 지었는데, 이른바 '지씨필검'으로 알려진 명문이었다.

친일 대역 송병준의 출세가도도 자객에서 시작되었다. 갑신정변으로 수구파 세도 민씨를 대량 학살하고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을 암살하려는 민파의 열기와 음모는 대단했다. 민영환 가문의 몸종으로 있던 연분도 있고, 일본 방랑 끝에 돌아와 일본말을 할 줄 안 데다 서민으로서 출세 의욕이 남다른 것이 겹쳐 자객으로서 적격이요 일찍이 선택받아 일본에 밀파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과 자주 접촉하는 동안 밀명을 일러바쳐 민파를 배신했다. (이규태)

이규태가 고종이 홍종우를 대면하고 '형가'를 운운하며 부추겼다고 말한 대목은 팩트는 아니다. 팩트는 부족할 때는 상상력으로 빈공간을 찾는다는 것이 문학으로 역사를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얼마전 고산자 김정호를 발표한 박범신이 대동여지도에 왜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는지를 기술한 장면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너무 멀고 당시로는 아무런 가치 없는 무인도에 불과하여 김정호가 표기할 가치를 느끼지 못햇다는 것이다. 그저 웃고 말 일이다. 어서 나머지 페이지를 채우자. 중언부언 참으로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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