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139회/ 12장 유소사(兪召史) (7)
[연재소설 벽상검] 139회/ 12장 유소사(兪召史) (7)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3.1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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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록은 1880년 홍문관에 근무하다 근무태만을 빌미로 파직당하여 얼마간 관직에서 물러나 있던 김옥균에게 군왕이 복직을 명하자 김옥균이 사양하는 마음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장면이다. 조선은 과거에서 보듯 이런 류의 문장에 능한 사람이 대접을 받는 나라였고 이런 류의 문장이 곧 경쟁력이었다. 김옥균의 한문 문장은 명문이다.

아래의 글은 국역연구원의 한역으로 역(譯)이 된 부분이다. 그대로 전재한다. 아마도 이 글은 그동안 수다한 김옥균의 저작이라 했던 그 어떤 글보다 진실한 김옥균의 육성이다.

“삼가 아룁니다. 신은 유배만 보내는 가벼운 벌을 받았다가 곧바로 용서해 주었기에 돌아와서 시골에 엎드려 있으면서 곡진하게 길러 주는 성상의 은혜에 감격해하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보충할 길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홍문관 교리에 제수하는 전지를 받들었는 바, 신은 참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두렵고 떨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과거 시험을 베풀어 선비들을 뽑는 것은 왕정(王政)에 있어서 긴중한 일이고, 경사를 만나서 공도(公道)를 넓히라는 성상의 분부가 아주 엄하였습니다. 그런즉 규찰하는 책임을 맡은 자는 더욱더 정성스럽고 부지런하게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신같이 형편없는 자가 잘못 홍문관의 관원으로 있으면서 어리석고 어둑한 탓에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필경에는 일을 그르치는 잘못을 불러들이고 말았는 바, 이와 같은 죄를 지었으니 무슨 벌을 받아야 합당하겠습니까.

성상의 도량이 하늘처럼 커서 화를 내지 않으시고 타이르기만 하시면서 변경으로 유배 보내는 가벼운 형벌만 내렸다가 겨우 백 일이 지나서는 갑자기 석방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명을 듣는 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얼굴을 가렸습니다.

지난날 신이 서쪽 변경으로 유배를 갈 적에 신의 노부는 관동(關東) 고을로 부임하여 천리 멀리 서로 나누어지면서 차마 서로 손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돌아와 뵈옴에 미처서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기뻐하기를 마치 다시 살아나서 만난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그 은덕을 보답하여야겠으나,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답하는 것인 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어찌 다시 관직에 연연해하는 마음이 추호라도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용하라는 은혜로운 명을 받았고, 또 새로운 관직에 제수하였으며, 심지어는 역말을 타고 올라오라는 명이 먼 시골에 내려짐에 시골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신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처럼 특별한 은혜를 치우치게 받는단 말입니까.

성상의 생각이 특별히 미천한 옛 신하를 생각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니, 신의 분수에 있어서 어찌 즉시 달려나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편안히 시골에 있지 못하고, 삼가 이미 교외에 나와 엎드려 있습니다. 의리상 즉시 달려 나아가서 멀리 떨어져 있던 정을 조금이나마 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어나 나아가려고 하다가는 도로 엎드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참으로 지난날의 허물이 다 씻어지지 않았고 염치의 도리를 어길 수가 없어서입니다. 여러날 동안을 명을 어기고 있노라니 더욱더 죽을 죄만 더해집니다. 이에 감히 부득불 정실(情實)을 토로하여 성상께 진달드리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인자하신 성상께서는 부디 굽어살피고 양찰하시어 속히 신의 직책을 체차하시고, 이어 신의 죄를 치죄하소서. 그리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경계가 되게 하소서.

신이 바야흐로 허물을 자책하는 중에 있으니 어찌 감히 다른 말을 덧붙일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성스러운 임금이 학문을 부지런히 강마하는 것은 실로 다스림을 내는 요체가 됩니다. 하물며 지금은 춘궁 저하(春宮邸下)가 예지(叡智)가 일취월장하여 서연(書筵)을 자주 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전하께서는 몸소 실천하여 가르치는 방도를 먼저 행하여 즙희(緝熙)의 공부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승정원일기 1880년 1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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