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2회/ 8장 속음청사 (8)
[연재소설 벽상검] 92회/ 8장 속음청사 (8)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0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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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욱이 춤을 추자 일단의 무동(舞童)들이 나와 군왕찬가를 불렀다. 무동들은 모두 여덟 명으로 팔팔수를 좋아하는 동양의 세계관의 단면이기도 하다.

아, 위대하신 우리 임금님! 성대한 명에 크게 빛나네.

두루 융성한 일덕(一德)이여 높은 이름 누릴 만하시네.

거룩하신 상제께서 아름다운 상서를 내려주셨네.

그 상서는 무엇인고? 아홉 줄기의 가화(嘉禾)라네.

무동들은 노래를 부르며 손에 '경풍도'를 받들고 들어와 군왕에게 바치며 노래를 계속했다. 경풍도에 그려진 '가화'는 한줄기의 벼에 아홉 이삭이 열린다는 상서로운 벼를 말하는 것으로 풍년과 국태민안을 의미하는 상상의 그림이다.

연회가 열린 곳은 연경당(演慶堂)이다. 연경당은 일종의 왕실 극장으로 '순조무진진작의괘'로 실체가 알려진 공간이기도 하다.

"허허, 뻔뻔하다. 그 인사 누구가를 딱 닮았구나...?"

군왕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허욱의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인사였다. 무동들은 다시 만수무(萬壽舞)를 불렀다. 군왕이 특히 좋아하는 노래기도 했다.

요지(瑤沚)의 섬돌가 복숭아 열리니

삼천년의 봄볓이 옥쟁반에 가득하네.

삼천년의 봄빛을 임금께 축수하니

상서로운 태양 붉게도 떠오릅니다.

'요지'는 곤륜산 '서왕모'가 사는 곳으로 서왕모는 이곳에서 삼천년에 한번 여는 복숭아를 관리하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전설의 여신이다. 서왕모는 주나라 목왕과 한나라 무제를 이곳으로 불러 연회를 열고 복숭아를 하나씩 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좋구나. 너도 흥겨우냐?"

군왕은 만수무를 들으며 술잔을 받아 입을 축이고 김윤식에게 물었다.

"소신이야 전하께서 즐거우시면 그리 따를 뿐이옵니다."

"그러냐? 그 말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전하 그건..."

"아니다. 사실은 나도 썩 마음이 내키지를 않는구나. 허나 기왕 벌어진 연회 아니냐?"

군왕의 표정은 전혀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당장 궁궐 바깥에는 수천 명의 외국군대가 진군해 있는 가공할 비상시국인데도 연경당에는 '보개'와 '차일'이 설치되고 악단 기생들 그리고 무동까지 동원된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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