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0회/ 8장 속음청사 (6)
[연재소설 벽상검] 90회/ 8장 속음청사 (6)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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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그만 연회장으로 납시지요?"

허욱이 군왕과 김윤식의 대화를 끊으며 연회에 나갈 것을 권했다. 군왕의 재가 없이 이미 연회를 준비시킨 모양이었다. 허욱의 임무(?)는 군왕과 정치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국정은 대원군에게 맡기고 군왕은 그저 즐기라는 식이었다.

"너는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오거라. 그리고 연회에 가자. 영선사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라지 않느냐?"

군왕이 김윤식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날개가 꺾인 통치자의 무력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전하..."

"가자꾸나?"

"전하..."

"그래. 날씨도 그리 덥지 않고 좋구나."

김윤식은 군왕의 뒤를 따르며 목이 잠기는 것을 참았다. 슬픔은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만 겪는 것은 아니다.


운양, 김윤식은 구한말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이다. 김윤식을 백만사 발간 국사대사전에서 찾아본다. 1974년 발간된 책이다.

김윤식(金允植1841-1920) 이조말기의 고관. 학자. 자는 순경(恂卿). 호는 '운양'. 본관은 청풍. '익태'의 아들이다. 윤신환에게 배우고 학문에 통달하여 1874년(고종11년)에 문과 급제. 1881년 영선사로 청국 천진에 파견되었다.

1882년 대원군의 집정을 배척하고 민씨일파와 결탁하여 이홍장에게 원조를 청하여 청병 4500명을 오경장의 지휘하에 조선에 파견하여 대원군을 잡아가는 등 무단히 내정간섭을 하게 된다.

1884년 전권대사 자격으로 러시아와 통상을 체결하고 1894년 갑오경장 후 김홍집내각의 외무대신으로 개혁정치에 힘쓰다가 친일파로 몰려 10년간 귀양살이를 한다. 1910년에는 한일합방조약에 가담하여 일본정부의 '자작'을 받았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자작을 반납하고 동포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본래 이름높은 학자로 일본 '학사원'의 회원이었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운양집, 천진담초, 음청사(陰淸史) 등이 그것이다.

감수자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학장을 역임한 당대의 석학으로, 사전의 권위는 어느 정도 인정된다. 그러나 김윤식에 대한 전개는 미덥지 않다. 이유는 김윤식을 언급하며 여러번 말한 바 있기에 생략한다.


연회는 '연경당'에 준비되어 있었다. 연회는 장악원악대와 장안의 기녀패들까지 동원된 거창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회장은 썰렁(?)했다. 군왕의 참석과 일급 예인들이 대규모 동원되기는 했으나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대원군과 무위도통사 등 조정의 실력자들이 모두 빠져 있었다.

"풍악을 치라!"

허욱이 군왕의 앞에 서서 연회장으로 들어오며 소리를 쳤다. 허욱의 성격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대원군을 높이고 군왕을 낮추는 행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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