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즉관광(藝卽觀光) 관광즉예(觀光卽藝), 마음치유 관찰법
[기획]예즉관광(藝卽觀光) 관광즉예(觀光卽藝), 마음치유 관찰법
  • 석용현 기자
  • 승인 2020.11.02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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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충남/ 석용현 논설위원] 자연이란, 그리스어로는 피시스(physis:태어나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쇠퇴하며 사멸하는 것이 자연이라는 뜻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그 자체 안에 운동 변화의 원리를 가진 것'으로서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거대한 동물로 생각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을 다루기 위해 고안한 개념적 도식도 이런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연은 다양한 사물들이 그들의 특징적인 형태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영역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목적이 자연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의 물리적·화학적 측면을 우주의 생물학적인 양상에 종속시켰는데 이는 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놀라운 사실이 될 수도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4원소(흙·공기·불·물)조차도 각각 우주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다.

현대의 자연관은 환경에 대한 인식의 제고로 종래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벗어나 서서히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은 하나의 관광으로서 문화론적 발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자연관광이란, 『서비스업』 자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유형의 관광을 이르는 말로서 자연환경에서 활동하여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백과사전 정의) 「영어」 nature-based tourism

그리고 생태관광이란 자연을 배우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여행인 ‘에코 투어(Eco-Tourㆍ생태 관광)’는 우리의 여행 관행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생태 관광은 선진국,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 등지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관광 형태다. 생태계를 파괴했던 지금까지의 관광과 달리, 자연을 배우고 최대한 보호하면서 관광의 즐거움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친자연주의 여행을 뜻한다.

평소에 본 주필은 “자연속에서 삼라만상 자연이 사람과 다름이 없는 생명을 가진 평등한 존재다” 라는 가치를 가지고 그림줍기 얼굴풍경 여행을 즐긴다. 즉 자연이 주는 삶이 예술적인 관광을 가능하게 하고 일상의 생활이 된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이 곧 예술(自然卽藝)이 되는 삶, 예술이 곧 자연(藝卽自然)이 되는 삶을 여행과 관광활동을 통하여 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이 곧 관광(藝卽觀光)이 되는 삶, 관광이 곧 예술(觀光卽藝)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즐거움으로 생의 가치를 행복으로 연출하고 있다.

자연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자연주의와 연관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유를 가지고 삶을 지배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마음의 자연주의를 일상의 여행과 관광이라는 방편을 통해 생활을 하고 있다. 즉 자연에 대한 관점을 문화, 관광, 여행, 예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되 너무 전문화된 차원이 아닌, 나의 생활 속에서 자연을 찾아가는 여행자의 길을 누리고 있다. 좀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즐겁게 실천해야 한다는 진정한 자연주의자는 과연 무엇일까,,,?

언제나 일상생활에서 자연을 통한 즐거움이 녹아 있지만 좀 더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보고 느끼며 살자는 가치관이다. 본 주필은 어렸을 때부터 계룡산 깊은 작은 시골의 농촌마을, 지금은 분청사기 도예촌으로 알려지고 돌담 풍경마을로 드라마나 영화 촬영의 명소가 되고 있는 구룡사지가 있는 계룡산 북쪽 고향마을에서 내가 좋아해 왔던 자연속에서 관광을 하고, 대학교에서 여행과 관광을 강의하며, 불교문화를 접하면서 서서히 자연을 얼굴풍경으로 찍을 수 있게 마음의 눈이 뜨이는 가운데 자연안에서 진리의 발견이라는 깨달음의 여행을 관광 행위를 통해 찾는 예술적 삶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그냥 자연을 바라보고 즐기는 단계에서, 모든 자연이 사람과 같은 소중한 생명이라는 생명사상, 평등사상이 있는 얼굴풍경 작가의 그림줍기라는 문화, 관광, 예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되 너무 전문화된 차원이 아닌, 우리 생활 속에 예술이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삶을 여행하는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철학과 일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생활속에서 좀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즐거워야 된다는 가치를 더하고 있는 것이 본 주필의 자연주의 여행관이다. 자연의 빛과 형상을 핵심적으로 다루었던 방법은 바로 본 주필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자 생활수행법이다.

자연주의 ‘생활법’ 이 한 단어에 자연주의에 대한 모든 실체가 들어 있다는 관점이다. 우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연주의라는 코드를 가지고 즐거움과 변화를 찾아주는 동기가 대단히 중요하다.

본 주필의 삶에서 예전에도 있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자연주의가 살아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전통 문화관광을 접하면서 불교문화와 예술을 접하면서 깊이 다가왔고, 이제는 그것이 일상의 생활여행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20년 전부터 그 갈망이 터져 나와 탄생한 “자연속에서 그림줍기”가 바로 카메라를 통한 사진작품, 자연주의 즐거운 얼굴풍경 여행법, <관광수행법>이다. 즉 ‘여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주의 관광수행자로 발전하였다. 자연을 배경으로 여행 과정 안에 ‘즐거움을 가미했다는 점이 깊은 의미가 있다’라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이렇게 2000년 때부터 준비한 자연주의 생활속 그림줍기 여행은 2015년 자연주의 화가를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되어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로의 변신을 가져오는 전시회를 갖고 얼굴풍경들을 묶어 그림그리기 하는 것을 시작하였다. 이는 또 다른 화가로의 삶을 구상하여 <자연주의 즐거운 여행관찰법> - <열굴풍경 그림줍기 사진작가로의 삶> - < 그림줍기 얼굴풍경 화가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본 주필이 그려낸 자연주의 삶은 3단계로 좀 더 진화되고 확장된 개념으로 짙어지게 되었다.

자연속에서 즐거운 놀이문화로, 창작이고 기쁨이고 보람으로 누구나 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하는 <자연의 즐거운 여행관찰법>으로 많은 사람이 지겹다고 말하는 코로나 19에 대한 극복과 경계를 뛰어넘는 관광하는 관찰수행법을 본 주필은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회를 드리고 싶다. 즉 생활속에서 자연을 통해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문화, 즐거움을 찾게 하는 여행의 관찰방법과 가치부여가 중요하다.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속에서 힘을 주는 방법이 없을까, 고뇌하는 핵심관광이 바로 이런 킬러콘텐츠다.

사실, 엄격한 자연주의는 일종의 아픔이다. 이런 아픔,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로움을 일종의 치유 측면에서 출발하는 부분에서 지구촌 사람들에서도 공통된 여행과 관광에 대한 향유와 기회요인을 제공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코로나 19의 고난을 감수하고 동시에 코로나 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는 세상에서 자연주의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의 괴로움과 쓸쓸함, 외로움이 가득한 곳이 자연주의인데 그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에게 맞는 오늘의 자연주의 관광이다.

우리가 그만큼 자연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고, 자연의 색상과 형상을 사랑하고, 생활 속의 즐거움 자체를 만끽하고, 나눠주고 싶은 문화예술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행관찰법이 지금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19속의 자연주의는 공유하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 마음속에서만 머물고 선뜻 실천하지 못한 일상의 자연관찰 수행법을 여행하고 함께하는 관광시대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재밌게 살아가는 생활여행 사상관이 중요하다.

정리하면 흐르는 강물처럼 부드러움과 지속성이 곧 강함이다. 완벽하게 삶을 살지 않더라도 부드럽게 살포시 인생을 여행하는 것, 이것이 코로나 19시대의 자연주의 생활법이다. 자연에 대한 그 의미가 도달되기까지 생활이 어떤 색상과 빛이 될 것인가, 내가 무엇을 보고 빛의 생명을 찾을 것인가 등 자연을 보는 여행자가 뭘 느끼고 공감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자연을 향한 사색을 하고 구체화해야 하는 문화, 관광, 예술적인 삶의 실천이 성공한 삶을 만드는 비법이자 관광의 기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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