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2016년 1월의 독립운동가‘조희제’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2016년 1월의 독립운동가‘조희제’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 석지후기자
  • 승인 2016.01.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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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염재야록』등 관련자료 11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조희제 선생을 2016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룰 개최한다고 1일 밝혔다.

조희제 선생은 1873년 12월 10일 전북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 회문리(回文里) 절골(寺洞)에서 조병용(趙柄鏞)과 안동 김씨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에 맞서 의병을 준비할 만큼 애국의식이 투철했던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선생은 기우만(奇宇萬) 의병장, 순절지사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항일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던 임실에서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재산을 털어 임실ㆍ순창ㆍ남원 등지에서 활동하던 의병을 직접 도왔고, 옥고를 치르던 애국지사의 뒷바라지도 도맡았다.

선생의 독립운동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염재야록(念齋野錄)』의 집필ㆍ편찬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의 독립운동을 기록하여 역사에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선생은 수십 년간 각지를 다니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후 저술 작업을 진행하여 1931년 초고를 완성했다. 책은 건(乾)ㆍ곤(坤) 두 책으로 나누어 편집하고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표지에는 ‘덕촌에서 그때그때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뜻의 『덕촌수록(德村隨錄)』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 질을 마루 밑에 묻어두었다.

그러나 1938년 『염재야록(念齋野錄)』의 편찬사실이 발각되자 선생은 임실경찰서로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옥고를 치루고 집으로 돌아온 선생은 일제경찰이 상투를 자르라고 다그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939년 1월 자결 순국했다. 광복 후 선생의 제자가 마루 밑에 숨겨놓은『덕촌수록(德村隨錄)』초고본을 다시 꺼내 편집ㆍ발간하면서 『염재야록(念齋野錄)』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염재야록(念齋野錄)』은 오늘날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1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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