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조희제 선생을 2016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룰 개최한다고 1일 밝혔다.
조희제 선생은 1873년 12월 10일 전북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 회문리(回文里) 절골(寺洞)에서 조병용(趙柄鏞)과 안동 김씨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에 맞서 의병을 준비할 만큼 애국의식이 투철했던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선생은 기우만(奇宇萬) 의병장, 순절지사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항일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던 임실에서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재산을 털어 임실ㆍ순창ㆍ남원 등지에서 활동하던 의병을 직접 도왔고, 옥고를 치르던 애국지사의 뒷바라지도 도맡았다.
선생의 독립운동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염재야록(念齋野錄)』의 집필ㆍ편찬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의 독립운동을 기록하여 역사에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선생은 수십 년간 각지를 다니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후 저술 작업을 진행하여 1931년 초고를 완성했다. 책은 건(乾)ㆍ곤(坤) 두 책으로 나누어 편집하고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표지에는 ‘덕촌에서 그때그때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뜻의 『덕촌수록(德村隨錄)』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 질을 마루 밑에 묻어두었다.
그러나 1938년 『염재야록(念齋野錄)』의 편찬사실이 발각되자 선생은 임실경찰서로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옥고를 치루고 집으로 돌아온 선생은 일제경찰이 상투를 자르라고 다그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939년 1월 자결 순국했다. 광복 후 선생의 제자가 마루 밑에 숨겨놓은『덕촌수록(德村隨錄)』초고본을 다시 꺼내 편집ㆍ발간하면서 『염재야록(念齋野錄)』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염재야록(念齋野錄)』은 오늘날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1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