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200회/ 29장 통곡의 정주성 (4)
[연재소설 청룡도] 200회/ 29장 통곡의 정주성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7.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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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을 포위한 관군 8천은 무려 28개의 작은 단위부대로 쪼개져 있었다. 순무영, 안주병영, 영변, 순천 , 순안, 곽산, 철산 등의 지방군과 김견신, 최항 등의 의병군으로 많게는 8백에서 적게는 150명까지 자잘한 연합군(?)이었다. 이들은 정주성을 사면에서 포위하고 각자 부대를 목책으로 독자적인 방어선을 삼고 작전에 나서고 있었다.

관군은 수십 문의 대완구(포)와 자모포(소완구)를 동원하고 60여개의 운제(공성용장비)를 성문 앞에 늘어놓고 순무영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강하지는 않군?"

홍경래가 서장대에 올라 관군의 동태를 살피며 막하들에게 말했다. 우군칙과 장봉사가 그를 따르고 있었다.

"아직 지휘체계가 일산분란하지 않은 듯합니다."

우군칙이 머리 위로 내리는 눈을 손으로 쓸어 내리며 말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엄동설한은 반군과 관군 양쪽을 모두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성안의 민가를 점거하고 있는 반군에 비해 설야(雪野)에 군막을 치고 야영을 해야 하는 관군은 죽을 노릇이었다.

"식량사정은?"

홍경래가 성안의 식량사정을 물었다. 장봉사가 대답을 했다.

"성안 세 곳의 창고와 성민들의 식량이 전부입니다."

관서평란록은 당시 정주성의 식량사정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정주성 안에는 삼창이 있었다. 사창, 신창, 승창이란 국가소유의 창고에 정곡 2500석과 잡곡 1000석이 있고 성안에 우물이 6개소가 있어 몇달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바깥의 동지들의 활동은?"

홍경래가 우군칙에게 물었다. 홍경래는 정주성을 닫아걸고 농성전을 전개하면서 사방에 첩자들을 풀어 흩어진 동지들을 재규합하는 한편 또다른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의 활동상황은 눈부신 것이었다. 첩자들은 평양, 구성, 영변 등의 동정을 파악하고 지역민심을 다시 교란하는 한편 영변과 구성 등에서는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켜 정주성에 집중된 관군을 교란했다.

그중 가장 탁월한 성과를 보인 자가 유한순이다. 유한순은 한양에 침투하여 김재찬과 박종일 등 오군영 장교들을 설득, 쿠데타를 기도하다 몰살(순조12년 2월) 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조선군의 기민함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홍경래군의 모습을 본다. 실제로 홍경래군은 많은 준비와 공을 들여 반란을 도모했다.

개전초의 홍경래의 피습사건이 없었고, 송림에서 안주병영군을 이겼다면 역사는 홍경래의 생각대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전쟁이나 반정은 항상 대세와 명분이 좌우한다. 홍경래군은 송림에서 일차로 관군의 기세를 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세가 꺾이고 명분도 찰지지 못햇던 것이 홍경래군의 한계였다.

역사는 어느때는 개인의 운명과도 보폭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대세와 명분이 부족해도 역사의 선두에 선 개인의 운명이 그것을 걷어차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경래의 운명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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