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기의 시대, 혁신학교
[기획] 위기의 시대, 혁신학교
  • 윤영상
  • 승인 2020.07.01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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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 내가 납득이 되어야 다른 사람 납득을 시키지
“주변의 학교 소식을 들어보니, 많은 학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등교 수업을 앞두고 갖가지 전화 때문에 등교 수업 준비를 못할 지경이라고 해요. 다행히 우리 학교는 이렇다 할 민원을 받지 않았어요. 담당자로서 고맙습니다.”

온라인 개학 이후, 등교 수업 앞두고 학교는 긴장감이 돌았다. 코로나19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아이들이 등교개학을 하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당연하다. 등교 개학을 하면 아이들이 교실에 모일 것이고, 감염이라는 것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어떤 조치가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불안한 곳에 아이들을 보낸다는 심리적 불안감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학교마다 망망 바다에 떠 있는 배 같았다. 게다가 고장 난 라디오에서 큰 폭풍우가 곧 닥칠 것이라는 소식은 들려 들려오는데 오두가도 못하고 있는……. 하지만 어딘가로 가야했고, 소리 없는 폭풍우와 만나야했다. 처음 맞닥트린 상황이라 방향을 쉽게 잡지 못했다. 배를 젓는 것이 득일까 실일까. 특히 방역이란 문제는 실타래를 풀다보면 다시 엉켜있었다. 완벽이란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 학교는 하나씩 풀어갔다. 함께 의견을 모으는 일은 마냥 협력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컴퓨터도 병렬로 연결하면 슈퍼컴퓨터가 된다고 한다. 순간순간 얘기하다보면 깜짝 놀랄 생각들이 나온다. 

“저학년은 조금 힘들었어요. 등교 수업을 한다고 일일이 전화를 하는데 세세한 것에 대한 것도 대답해주느라 첫 통화는 20분이 걸렸어요.”

저학년 담당 선생님이었다. 어쩌면 교무실로 올 여러 전화들을 학급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놓치기 쉽지만 ‘세세하게 안내하느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많은 결정들이 이루어질 때 세세하게 협의를 하지 않는다. 실행할 주체 구성원들이 의견을 나누고,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갈 것과 알아서 할 것을 정하는 협의를 하지 않는다. ‘정해지는 대로’, ‘지침대로’, 혹은 ‘옆 학교 혹은 많은 학교들이 하는 대로’ 한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학교의 실행 구성원들이 세세하게 안내를 하지 못한다. 내가 납득이 되어야 상대방도 납득을 시킬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는 그러지 못했다.

◈ 작은 공동체에 모두가 참여하고 결정하는 방식을 고안하다.
‘학교들은 위기가 발생하자, 두 갈래로 갈렸다. 서로 떠넘기고 눈치보다 원래 하던 대로 혹은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학교, 권한과 책임을 나눠지고 자발적 참여에 따라 구성원 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끌어낸 학교. 차이는 민주주의 경험이었다.<후략>’

소담초를 취재한 시사인 666호 기사의 내용 중 일부이다. 민주주의는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로, 즉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을 가진다. 쉽게 하면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같다. 민주주의에도  규모나 공동체의 성격, 방향, 구성원 다양함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즉 민주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학교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다시 말해 ‘그 학교는 이렇게 하는데 우리 학교는 왜 그래?’이 물음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학교 나름대로의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다양한 운영형태가 있다.

그 과정을 보면 의사결정 조율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공유를 통해 소통된다. 규모가 큰 학교에서는 의사결정을 위해 동질(보통 학년 혹은 교과)의 공동체에서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모여서 의견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치고, 대화와 타협의 결과로 어떤 일이 결정된다. 그리고 결정된 결과는 다시 속한 공동체로 내려간다.

이 의사결정의 모델은 대부분의 나름 괜찮게 민주적 원리가 작동되는 학교들의 모습이다. 소담초에서는 이 모델의 맹점. 의사결정이 단순화되어 좋긴 하나 대부분 공동체 구성원들은 의사결정의 순간을 경험할 수 없고, 의견을 내는 방법의 한계 등의 수동적인 참여로 참여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결국 그들끼리의 의사결정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두고 고민했다. 전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은 없을까?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해줄 직접 민주주의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두레’라는 조직이었다. 학교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예를 들어 교육과정, 수업, 평가, 학생자치, 학생생활교육은 학교가 학교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큰 주제였다. 예를 들어 평가는 아이들의 성장 통지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안내하면 좋을까라는 내용을 두고 협의한다. 여기에는 각각의 경험을 가진 교사들의 생각과 학교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등 고려할 사항들이 많다. 물론 학교 밖에서 바라보면 ‘부족함’이 눈에 띨 수도, 그 정도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게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학교인 경우, 그런 양식을 만드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자부실을 갖고 한 일에 대한 또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5~6개의 주제에 각 학년에서 한두 명씩 참여 한다. 상설 TF 같은 것으로 이렇게 모인 분들이 모여 각 학년의 의견을 모아 협의하고 결정해나간다. 기존의 학년부장이라는 대표가 아니라 학년의 구성원이 대표가 나가서 깊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참여한 교사는 학교의 어떤 주제에 대해 새로운 의사결정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교직원은 모두 하나씩의 두레에 들어간다.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같이 한다. 이른바 ‘작은 공동체에 모두가 참여하고 결정하는 방식’이다. 1년차 혼란을 거쳐 2,3년차를 거치며 더욱 단단해졌다. 물론 다른 학교나, 특히 작은 학교는 다른 운영형태가 필요하다.

◈ 네 생각은 어때?
민주주의 정원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가꾸는 정원사가 필요하다.’라고 한다. 교과서로 배웠던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보여 왔던 운영 방식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고, 특히 여전히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원리에 머물고 있다. 훨씬 더 중요한 사안에 대한 정확한 본질 파악, 대화, 타협, 조율 등이 ‘다수결’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특히 민주주의의 산실이 되어야 학교가 움직이는 작동 원리는 관료제였다. 관료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관료제’가 학교의 주 작동 원리가 되는 것이 문제다. “이 업무는 누구 것인가?”,  “이 일을 몇 회(시간) 했는가?”, “활동들이 문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가?”,  “누구 책임이지?”,  “교육부(청)의 지침이야?”,  “교장 선생님의 지시? 결재 난 거야!” “언제까지 보고해?” 등 이러한 용어들이 학교에서 오고간다. 학교가 공공기관이며, 교사는 공공재이다. 그래서 일정한 행정 체계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네 생각은 어때?” 그 생각을 모으고 그것을 실천해보는 경험을 많이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그것은 아이들에게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한 물음들이 학교를 시민이 탄생하는 곳으로 만든다. 혁신학교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 물음이 위기에 시대에 대답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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