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44회/ 21장 암행어사 (4)
[연재소설 청룡도] 144회/ 21장 암행어사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0.05.1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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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팔도는 바람잘날 없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는 이 시기는 더욱 그랬다. 이 시대는 학자들의 철저한 연구에 어느 정도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학자들은 이 시대로 오면서 조선사회의 기반이 되어온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혼란이 조선의 붕괴와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 말에 동조를 한다.

학자들은 이 시대의 상업의 발전을 눈여겨 봐야야 한다 말한다. 상업의 발전이 농업의 쇠퇴를 불러 농토에서 밀려난 백성들의 새로운 기반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 판단은 조금 초점이 맞지 않는 말이다. 이 시대의 농업은 쇠퇴가 아니라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농업은 조선백성의 생도지망의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선후기 논과 밭에 직접 씨를 한알씩 심어 농사를 짓던 방법에서 모내기를 따로 하는 이양법의 개발과 보급은 광작 농민층의 확대와 농지에서 밀려나는 농민들이 생겨난 것이다. 밭농사도 마찬가지였다. 밭고랑에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는 농법이 개발되면서 소출의 증가와 상대적으로 노동력의 비약적인 감소가 나타난 것이다.

이 현상은 조선사회에 사건이었다. 농토에서 밀려난 임금 농업인들이 도시로 밀려들었고 도시에서 노임을 팔던지 아니면 소규모 좌판이라도 벌려 생업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도저도 아닌 농민들은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야 했다.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순조초기 경상도와 충청양도의 무전농민이 10만이 넘었고 경상 전라도까지 수만 명의 부랑아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정조 21년 12월 무신일에 채제공은 이렇게 말한다.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아뢰기를,

“요즘 듣건대 호남의 유개인(流丐人)이 호서지방으로 흘러 들어감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곳곳에 유둔(留屯)하고 있다 합니다. 호남의 도신과 수령에게 신칙하여 구휼하는 방도를 강구해서 소문을 듣고 도로 모이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금년 농사와 민간의 정세를 보건대 세금 독촉에 부대끼는가 하면 먹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형편이니, 반드시 유리(流離)하여 다른 곳으로 갈 근심이 있을 것인데, 일념으로 걱정되어 잊혀지지 않는 마음이 어찌 일찍이 조금이라도 느슨한 적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지금 경의 말을 들으니 더욱 몹시 불쌍하고 측은하다. 이미 그런 말을 들은 뒤에 어찌 차마 안고 이끌며 다른 곳으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연전에 관서(關西)에서의 일처럼 혹 쇄환(刷還)하는 일이 있게 되면 도리어 그 본성을 따르는 도리가 아닐 것이다. 영남과 호남의 도신에게 엄히 신칙하여 위급함을 구제하고 진휼(賑恤)하는 방도에 특별히 힘써서 유리하는 자와 거주하는 자로 하여금 소문을 듣고 도로 모여서 마음 편히 고장에 살게 하는 실효가 있게 하도록 하라. 도백과 수령의 근만(勤慢)은 저대로 고찰(考察)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뜻을 아울러 분부하라.”하였다.

위의 유개인은 부랑인을 말한다. 부랑인들이 한지방으로 몰려들어 아예 주둔지를 정하고 뭉쳐 있다는 것이다. 조정은 이들이 농토와 생업에서 유리되어 떠도는 백성들이란 것을 파악하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채제공은 이들의 구제책으로 살던 곳으로 이동시켜 생도지망의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정조도 고민을 하지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아래서 해서지방의 명화적중의 명화적으로 용화가 떠오른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명화적도 일종의 부랑아집단이다. 거사패, 향도계, 사당패, 유발승, 산대당, 거리패 등 조선의 수많은 부랑아 집단 중 명화적은 조직적으로 무장을 한 일종의 반당반벌(反黨反閥)집단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본격적인 반왕반국가라는 이념을 내걸지 못한 것이 빨치산이나 레지스탕스로 발전하지 못한 한계다.

홍경래는 이 반당반벌 집단이나 하층 무법집단이나 지도자들에게는 찾을 수 없는 혁명이라는 이념의 기치를 내세운 조선의 유일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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