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65회 10장 양산박(2)
[연재소설 청룡도] 65회 10장 양산박(2)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2.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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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장과 가희는 쉽게 밥 한상을 받았다. 밥과 국 그리고 술과 다과와 약간의 고기가 제법 풍성한 상이었다. 잔치 인심 좋기로 유명한 조선이었으나 서북의 흥(興)은 특히 더했다.

조선은 주작(酒酌)에 법과 격식이 있었다. 주작은 악(樂)과 무(舞)를 말한다. 정순왕후는 순조가 열다섯이 되자 악과 무를 알 나이라 하여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조선의 풍류는 악과 무였다. 술과 음악이 주인 악과 무를 돕기 위해 바둑 축국 등이 동원되어 잔치의 흥을 돋웠다. 조선의 남자들은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음악을 감상하고 술을 음미하며 흥이 나면 스스로 춤추고 노래를 하는 실행(實行)을 주저하지 않았다.

조선실록은 곳곳에 남자들의 노래를 기록한다.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 답사를 위해 청주에 도착했을 때 청주의 노인들이 몰려나와 길가에 서서 합창으로 노래를 하며 그를 맞이한다.
조선은 음악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조선팔도 이름 있는 고을에는 자체 악원(樂院)이 구성되어 있어 관과 지방의 각종 연회에 동원되었다. 관에는 악을 전문으로 한 아전이나 이속이 있었고 그들 중 실력이 있는 자들은 한양의 정약원이나 각 군영의 악단에 스카웃되기도 한다.

“호호, 대단하네. 수백 명은 족히 되겠어?”
오포장이 걸쭉하게 말아내온 돼지국밥을 한술 뜨며 말했다. 말린 무청에 비계가 붙은 돼지 살코기를 숭숭 썰어 넣고 끓인 평안도식 국밥이었다.

“큰 양반집인가 봐요? 관의 악단까지 온 걸 보니...”
가희가 잔칫마당 한쪽에 금사(琴師)를 중심으로 대여섯 명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거문고 현 등 현악기 위주였다. 안주나 영변에서 온 악원(樂員)들이 분명해 보였다.

“호호 대단하구나. 이런 시골에서 한양 정승집을 능가하는 잔치를 벌이는 인사가 있다니?”
오포장은 술 한잔을 자작으로 따랐다. 거문고가 음을 뜯자 각기 현(弦)이 화음을 맞추며 잔치의 분위기를 띄웠다. 마당 여기저기 놓여 있던 바둑판에는 사람들이 한두 명 모여 앉았고 그곳으로 술상이 들어가기도 했다.

“호호 거문고와 바둑은 썩 잘 어울리는 궁합이란 말이야.”
오포장은 고기 한 점을 집어 장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고려 조선의 풍류의 트랜드는 금기서화(琴碁書畵)라지만 실제 트랜드는 금기시주(琴碁詩酒)라 해야 맞다. 거문고를 배경삼아 바둑을 두고 시를 지으며 한잔 술에 취한다는 풍류 의식이 바로 금기시주며 실제로 조선사회 전체를 통하는 풍류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바둑과 거문고는 무엇인가 통한다고 믿었다. 비슷한 시대 장악원정을 지낸 임상정(1681-1755)의 문집에 이런 기록이 있다.
빼어난 선비들은 성품이 보통인과 다르다. 그들은 특별한 기운을 타고난다. 그 기운은 태어날 때 그들의 기안에 응축되어 있다가 밖으로 나오며 사물에 나타나게 된다. 심획으로 나타나면 왕휘지의 필법이 되고 구상으로 나타나면 오도자의 그림이 되며 혁추의 바둑, 환이의 피리, 혜숙야의 거문고 등이 이런 경우다.
재주는 다르나 기운이 새어나왔다는 것은 하나다. 이는 모두 정기로 모여 있다가 재주로 발산한 경우다. 이 재주에 개인의 지극정성한 노력이 보태어져 천하의 오묘한 인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기예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 몇 있다. 노래로 바둑으로 또 거문고로 (今之世亦多以伎鳴者惑以歌惑以碁往往有檀名者).
조선후기에 와서 양반사대부는 물론 일반 평민들까지도 바둑 거문고는 자연스러운 삶의 여기(餘伎)로 인식했다. 잔칫집에는 음악이 있고 바둑판 몇 벌 놓여있어야 된다고 믿었다. 음악과 술 그리고 바둑이 어우러져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만 제대로 된 잔치였던 것이다.

“하하, 푸짐하군. 그런데 자네들 이상한 소리 못 들었나?”
“무슨 소리 말인가?”
“난리가 날 거란 소리 말이야?”
잔치가 흥이 오르고 여기저기 술잔이 오고가더니 한쪽에서는 이런 대화가 들렸다. 오포장은 귀를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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