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54회 8장 국마 國馬 (5)
[연재소설 청룡도] 54회 8장 국마 國馬 (5)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1.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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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안주에 와 방을 보았겠지?"
조종영이 말했다. 그의 등 뒤에는 팔폭 병풍이 쳐져있고 좌측에는 서류를 담는 함과 작은 책장이 놓여 있었다. 책장 옆에는 밀랍으로 만든 매분(梅盆)이 한껏 향(?)을 풍기는 듯했다.

"호호, 보았지요."
"허?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 그런다?"
"헙!"
조종영이 신경질적으로 재떨이를 두들겼다. 그의 기세에 오포장은 주눅이 든 시늉을 했다. 물론 오포장의 진면모는 아니다.

"험, 내가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기찰 내용을 나에게도 알려달라는 것이네."
"네에?"
"물론 기밀사항이라는 거 나도 잘 아네. 허나 지역을 책임지는 관장으로 나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할 거 아닌가?"
"형방과 군현에서 올라오는 첩보는 어쩌시고요?"
오포장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반문을 했다.

"여기는 하삼도와는 다르네. 향반은 물론 아전들까지 비협조적이야."
"호호, 향반은 몰라도 아전들까지 그럴 리가요?"
"서북이 원래 거칠지 않나?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나에게도 영 대우를 하지 않네. 민심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어."
조종영은 노련한 관장이었다. 그는 이미 하삼도의 해안지역에서 현감 군수 등을 수행한 바 있었다. 안주목사로 부임해온 이후 지역의 상황이 하삼도와 확연히 다르다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호호, 아전들이야 관장의 수족인데... 소인은 별다른 걸 못 느꼈는데요?"
"혀에 달라붙은 사탕노릇이야 하지. 허나 관장인 나에게 솔직하게 대하지를 않아."
"향반들의 협조를 구해보시지요?"
오포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향반(鄕班)은 일반 백성들과 조선 사회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 군반일체(君班一體)를 주창하는 양반사대부의 하부 조직을 말한다. 조선의 군왕은 좌에 양반, 우에 일반 백성을 놓고 나라를 경영하는 저울추와 같았다. 소수의 양반은 언제나 다수의 백성들을 갑(甲)의 입장에 서서 유린했다. 현명한 국왕은 어느 정도 저울추를 맞추기도 했으나 대다수는 실패한다. 
조선의 군왕들 중 백성들의 편에 서서 나름으로 노력을 한 몇몇 군왕들이 있다.

현종은 호남과 해서에 기근이 들어 아사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속출하자 대응책을 고심하며 죽고 싶다는 말을 실록에 남기기도 한다.
영조도 현종 못지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영조는 노비혁파를 도모하면서도 자신의 딸에게 3백 명이 넘는 노비를 하사하는 이중성도 보여준다.

"향반들이 쌀쌀맞기 그지없어."
"그건 또...?"
"어제 향반회의에 참석했는데 대놓고 조정을 욕을 하지 뭔가?"
조종영이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이고 씩씩 거렸다. 정조 순조 연간의 서북지역의 향반층은 조선의 여타 지역의 양반층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서북지역은 향반과 상민이 생도지망을 꾸려가는 입장에서 상호 협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성들은 향반층에게 공동체를 구성하는 입장에서 희생(?)을 요구했고 향반층은 적극 협력을 했던 것이다.
양반 상놈으로 양분을 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갑을(甲乙) 관계를 유지하고 고착화시킨 조선의 후기사회에서 서북은 약간 차등이 있었던 것이다. 이 현상을 어떤 학자는 미발달된 양반층 운운하는 하품(?) 나오는 논문을 쓰기도 하지만 이 말은 그저 하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

"호호, 그런 작자들은 끌어다가 치도곤을 치셔야지요?"
"이 사람아, 관장이라고 아무구나 치도곤을 칠 수 있는가? 끄응... 그래서 말일세, 자네가 나의 체면을 살려주게. 포청 무섭다는 거 그걸 한번 보여 달라 그 말이야?"
조종영이 오포장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고 작은 소리로 당부를 했다. 오포장은 눈빛을 반짝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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