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48회 7장 백경한 사건(6)
[연재소설 청룡도] 48회 7장 백경한 사건(6)
  • 이 은호 작
  • 승인 2019.10.31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생 운진(24세)은 형리의 심문을 받으며 완강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사건을 둘러싸고 자신이 의심을 받은 이유를 항변하고 스스로 바로잡는 자구책을 보여주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형리는 운진의 입에서 나온 기생 '차례'를 다음날 불러 심문하고 끝내 대질 심문까지 벌여 다음과 같은 동추(조서)를 꾸며 위에 보고한다.

다음날. 기생 차례(次禮. 23세)를 문초하다.

수청기생 운진이 진술하기를 운진이 문천 관아에서 찾아낸 옷가지를 내가(차례) 훔친 것이라 하였고 또 내가 문천군수와 형부 처제라 부를 정도로 친하다 하며 의심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관아의 관비이고 문천군수는 한양의 사대부입니다. 어떻게 조금 친하다 하여 방종을 떨겠습니까. 그리고 관아의 내밀한 방에 있는 군수의 옷가지를 훔쳐 문천 관아의 기생들 방에 놓아두겠습니까.

그러나 일이 은연중 여기까지 이르렀고 문초까지 받는 입장이니 낱낱이 실토를 하겠습니다.

먼저 내가 문천군수와 각별하다 하는 것은 나의 언니 때문입니다. 문천 고을에는 아미산과 옥녀봉이 있어 맑은 산과 물이 깊기에 미녀들이 난다고 합니다. 수목이 울창하여 서시(西施)가 태어나고 정기가 모여 '달기'가 태어난다하는 이치겠습니다. 나의 언니가 그렇습니다.

침착하고 고상하고 자태가 얌전하니 이름답기가 그림 같습니다. 마치 고기가 물속을 노니는듯하고 기러기가 강가에 앉은 듯 언니의 기품은 빼어났습니다. 백옥한수(白玉寒水)보다 더 곱상한 언니이기에 문천군수의 사랑을 받았고 좋은 날에 인연을 만들어 신혼을 즐기다가 뱀꿈을 꾸어 딸까지 낳았습니다.

아내를 염려하는 사람은 은장도를 생각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처가의 기둥도 사랑한다 했으니 내가 문천군수와 형부 처형 한다 해서 무슨 잘못일 수 있습니까.

속담에 돌로 치면 돌로 때리고 매로 치면 매로 때린다 했으니 '예양'은 '지백'에게 (두 사람 다 춘추시대의 협객) 예로 대했고 여희(如姬)는 자신을 알아주던 공자에게 죽음으로 갚았으니 이 모두 은과 예를 아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문천군수는 원래 습성이 시와 술을 좋아하는데 여색을 밝히는 것은 고질적입니다. 관원들과 공무를 나누는 동안에도 술과 시로 시간을 보내며 기생들을 불러 아득한 회포를 풀고는 했습니다. 비유하면 바둑을 두며 하잘 것 없는 잡새들을 생각하고 술잔을 받으면 향분 냄새부터 느끼며 시를 읊조리면서 벌써 여자와 운우(雲雨)의 뜨거움을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 자입니다.

내가 미녀들을 뽑아 그에게 대어 주는 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평소 여자들에게 질투와 투정을 일삼는 문천군수를 잘 압니다. 아마도 옷가지 일도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은 문천군수의 해코지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로 생각됩니다.

잘 살펴 처리해 주십시오.

모일(某日) 운진, 차례를 다시 조사하다.

다시 문초하기에 답합니다. 이번 옷가지 사건은 이미 다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당모자(唐帽子)도 잃어 버렸다 하니 이건 그날 일이 문천군수의 장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두 사람이 즉각 문천군수에게 편지를 써 모자는 또 무엇이냐 따지자 문천군수는 니들 기생들이 나를 박정하게 대하고 멋쩍게 하여 조금 타박을 하니 이런 해코지를 한 것이 아니냐며 빈정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냥 희롱삼아 장난친 것인데 일이 이 모양이 되어 비난을 사게 되었으니 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천군수의 답변대로 우리들 기생들은 그를 그리 박대하지 않았습니다. 당모자 또한 사소한 것입니다. 옷가지나 당모자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문천군수는 수법이 교묘하고 생각이 민첩하여 재임기간에도 물건을 취하는데 구애됨이 없이 조심스럽거나 눈치 볼 것도 없이 마구 취하여 관아에 실오라기 한줌 남은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박정하고 무미하기로 따지면 그를 당할 사람이 없는데도 오히려 우리들을 탓하고 욕하니 적반하장이라 하겠습니다.

마음이 굽은 자가 홍화(弘化)의 문을 넘고 바둑에서 선수(先手)를 쓰는 자는 반드시 열두 벽을 만나게 된다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고 되로 주면 말로 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문천군수에게 하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보증하건대 문천군수는 지난번 함흥에서도 관아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생을 밤을 핑계로 마구잡이로 욕을 보이고 관아에 속한 여자들을 마구 불러내어 음탕한 짓을 일삼았습니다. 특히 숙소에서는 자신의 친한 친구와 함께 기생 한명을 불러 둘이서 욕을 보여 사람들 앞에서 똥을 누는 봉변을 보게 하였고 행수기생을 친구와 더불어 다시 욕을 보이는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더구나 한 기생을 보고 밤을 이용하여 기생들의 방을 들어가 무릎으로 기어 다니다가 다른 여자의 다리를 쳐드는 일로 웃음거리가 되는 등 필설로 형용하기 힘듭니다.

말은 천리를 가고 방(榜)이 길가에 붙으면 지나는 사람마다 보고 전하여 모두 알기 마련입니다. 이 행위 하나만 보아도 우리들 기생의 처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습니까.

- 이로 볼 때 가마솥 밑이 검은지 살필 필요 없고 내가 노래하는데 사돈이 선창을 한다면 다들 웃을 일로 보입니다. 각 개인의 말을 상고해 보건대 운진의 죄는 가볍고 차례 또한 그러 하니 도둑에는 살필 바가 있고 허물에도 정리가 있기에 정상을 참작할 만합니다. 도둑은 용서할 수 있어도 간음은 용서할 수 없으니 이 점을 잘 살펴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도사(都事)께 보고드립니다.

이 사건은 형리에 의해 혐의 없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의견서가 붙어 있다. 지방 관장의 치졸한 행동과 지방관아의 기생들의 고초가 적나라하다. 동시에 지방의 어린 기생들까지 바둑을 빗대어 사회상을 비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후기 바둑이 얼마나 사회 속에 녹아 있었는지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