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칼럼] 충청도 계수관(界首官) 홍주와 홍충도
[충청 역사칼럼] 충청도 계수관(界首官) 홍주와 홍충도
  • 이 청 논설실장
  • 승인 2019.10.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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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투데이 /이 청 논설실장] 일성록에 홍충도 감사 ‘이병정’을 탄핵하는 암향어사 ‘김이희’ 의 보고서(서계)가 실려 있다.  일성록은 정조임금의 개인 기록집으로 이 보고서가 실려 있는 시간은 1779년 정조 3년이다.

김이희는  보고서는 홍충감사 이병정이 30개 군현에서 1876냥을 속전으로 거둬 착복하고 소도살령을 어기는가 하면 감영의 창고를 사사롭게 사용하는등 전횡이 심하다며 탄핵을 하고 있다.
이병정은 당대의 실권자 ‘홍국영’과 친하다는 이유로 여려번 탄핵을 당하다 지방으로 내려간 자리가 홍충감사 즉 홍충도 관찰사다.
이병정은 홍백(洪伯)으로 불렸다. 홍충도는 홍주와 충주의 첫글자를 취해 도명(道名)을 지은 것으로 정조 3년 당시 충청도는 홍충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5백년간 충청도의 도명은 어지러울 정도로 변동이 심했다.
특히 연산군부터 고종까지 도명 변경이 20차례나 있었다. 도명은 홍주 공주 청주 충주의 첫자를 취해 만든것은 변동이 없었으나 조선후기 홍주 공주가 더욱 강조 되었다.

이유는 홍주 공주가 호서지방의 유력한 대도회지인 탓이다.
실재로 조선 5백년간 홍주를 첫자로 사용한 도명이 백년이상 유지된 것도 사실이다.  조선후기 호서의 주도권은 홍주 공주로 완전히 넘어 와 있었다.

홍주는 호서 우도의 수부로 정치력과 행정력을 함께 구비한 관원이 발탁되어 목사로 내려왔고 역대 목사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 없다.
감사 이병정이 탄핵 되어 돌아간 후 홍주 목사로 부임한 사람중에 ‘유의’가 있다. 유의는 토정 이지함을 방불케 하는 사람으로 정조가 여러번 내리는 벼슬을 마다하다 정조가 보낸 의급부 군관들에 의해 가마에 실린채 체포되어 와 벼슬을 받고 부임한 곳이 홍주다.

유의가 홍주목사시절 홍주역중 하나인 금정역에 다산 정약용이 근무하고 있었다.

종6품관에 불과한 정약용은 유의에게 여러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전혀 답장이 없자 낮은 벼슬이나 임금의 측근(?)인 자신을 무시했다 생각하고 유의를 찾아가 항의를 하다 망신을 당하고 만다.   ‘관원들간 서찰이 말이되나? 공문을 보네라’정약용은 이말에 아차 싶어 사죄를 한 후 목민심서에 이 에피소드를 수록한다.

유의는 청렴하고 공정함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유의는 소통이 된 사람들에게는 격의가 없다. ‘이문원’에서 연암 박지원의 사물을 팔아 술을 먹은 사건은 유명하다.
유의는 2년간의 목사를 마친 후 홍주를 떠나며 지역을 추억한다.
호서 계수관 천년을 빛나고
선비는 아름답고 백성들은 순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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