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 칼럼] 내포 통신
[충청 역사 칼럼] 내포 통신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8.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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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김경선연행록 博局如我東。而但將不方行。士不正行。車行如我法。包遇敵將。擊乃用梯。象行以田。馬行以口。卒有進無橫行。 碁惟中置一點。餘如我法。이라 쓰고 있다.)
(자료. 김경선연행록 博局如我東。而但將不方行。士不正行。車行如我法。包遇敵將。擊乃用梯。象行以田。馬行以口。卒有進無橫行。 碁惟中置一點。餘如我法。이라 쓰고 있다.)

 

[충남투데이 / 이 청 논설위원] 내포(內浦)라는 말이 있다. 안개라는 순수한 우리말과 통하는 내포는 바닷물이 내륙 깊은 곳까지 소통되는 교통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개는 오리무중을 가리키기도 한다. 천추(天秋) 또는 풍운(風雲)이라 말하는 역사는 안개다. 안개 속에서 후대에 무엇인가를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통신을 했다. 역사쓰기는 결국 기록의 결집이다. 아래는 필자발굴 조선 일기의 하루분이다. 조선말기 양평에 살던 지남규라는 상인이다.

10월10일(8일9일 해독불가).  맑음
을동과 바둑을 두어 이기고 지고 했다. 나무값으로 15냥을 썼다. 오후에 박초시 일행과 활을 갖고 강상정에 가 활 15발을 쏘고 돌아왔다. 동리 최모가 와 돈 30냥을 빌려달라 해 들어준 후 저녁을 먹여 보냈다. 늦게 눈이 오는 걸 보고 문을 닫고 을동을 불렀다.
(晴 與乙童 對碁相勝敗半分矣 柴木價十五兩二錢 午後 朴與同人 待弓矢江上亭 習射三巡下來  洞里崔來 請金三十兩 可 夕飯接待 晩雪至 閉房門 呼乙童).

지남규의 일기도 역사쓰기의 한 행위다. 지남규는 일기라는 기록을 통해 당시대에서 미래라는 세계와 통신을 꾀했고 그 통신에 성공하여 자신이 살았낸 지극히 소박했던 일상의 시공간을 소개한다. 필자는 지남규와의 통신자로 그가 전하고자 했던 일상 속에서 을동을 주목했다. 바둑마니아로 을동의 존재가 반가웠기 때문이다. 역사가 쌓아온 기록물 중에서 을동과 같은 경우는 많다. 김경선(金京善, 1788-1853)이 그런 경우다. 김경선은 1832년 중국 연경을 다녀온 후 ‘연행록’을 남겼는데 그 속에 바둑에 관한 매우 중요한 기록을 한 건 남긴다.

김경선은 중국 연경의 시가지 풍경을 묘사하며 조선의 ‘동의보감’이 중국 한약계를 평정(?)하고 있는 것에 놀라며 중국의 장기와 조선의 장기가 매우 다른 점을 증언한다. 장(將)의 움직임과 졸(卒) 그리고 마(馬) 상(象) 등의 기물의 움직임을 조선 장기의 기물과 비교하여 소개한다. 김경선의 장기 기록은 오늘날의 한중 장기의 모습과 똑같다.

김경선의 호기심은 장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경선은 당시 연경에서 두어지던 중국 바둑을 관찰한 후 ‘중간에 한점을 놓는 것 외에는 우리와 두는 법이 같다’고 기록한다. 김경선의 여타 자료는 그가 바둑을 잘 이해했던 사람임을 알려준다. 바둑을 이해하던 김경선이 중국 바둑과 조선바둑은 대동소이하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갯속이라 말할 수 있는 역사는 이렇게 쓰여진다. 기록자와 해석자 사이에는 끝없는 논의가 있다. 분분한 논의를 거쳐 역사의 안개는 조금씩 실체를 보여준다. 지남규스토리도 이런 논의를 거칠 때 비로소 역사의 한 장으로 정립될 것이다. 당진 면천읍성도 그렇다. 역사는 전문가가 없다. 아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 역사다.

하여 미친듯 자료를 모으고 귀동냥을 하고 토론에 토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충남투데이가 면천읍성 복원 작업에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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