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청룡도] 18회 4장 《서로(西路)의 상인(4)》
[연재소설 청룡도] 18회 4장 《서로(西路)의 상인(4)》
  • 충남투데이
  • 승인 2019.08.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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塔 너는 어인 까닭으로
세월의 법당을 벗삼아
살아왔던 것이더냐

 “형님, 밥 먹고 재미난 투전이 있는데 한번 보시렵니까?”
 식사 도중에 우군칙이 물었다. 장국에 쌀밥 그리고 고추장에 풋고추가 한바구니 있는 성찬이었다. 우군칙은 밥 한술에 고추장을 듬뿍 찍은 풋고추 하나를 우직우직 씹어 먹었다.
 “투전판에? 나 그런 거 취미 없다.”  
 “형님, 골패가 아니고 바둑입니다.”
 “바둑?”
 홍경래는 바둑이란 말에 관심을 보였다. 바둑은 조선의 가장 유행하는 놀이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퍼져 있었다.
 “정주 부자 허낙생과 담배 오백 근 내기판을 하기로 했습니다.”
 “뭐야? 군칙이 니가 담배 오백 근 내기 바둑을 둔다고?”
 “아이고 그게 아니고요. 각자 선수를 한명씩 동원하여 붙이는 판이지요. 이행수가 한양에서 데려온 고수가 있다고 해서 제가 꾸민 일입니다. 이행수 말로는 당대의 국기(國碁)랍니다.”
 국기는 국수의 다른 말로 조선 후기 바둑의 최고수는 국기로 통용되었다.
 “국기? 그럼 김종귀가 희저 형님 집에 와 있다는 거냐?”
 홍경래는 바둑의 신으로 통용되던 전설의 고수 김종귀를 거론했다. 희저는 가산의 부호 이희저로 홍경래의 정신적 후원자이자 김사용 우군칙과 더불어 자금 지원책이었다. 이희저는 안주와 정주 그리고 의주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에서 물상을 열어 가산의 가장 큰 객주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종귀는 아니고요. 그 정도로 실력이 된다는 거죠.”
 “그자는 지금 어디 있나?”
 “저쪽 방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허낙생 돈 좀 뜯어내야죠. 보통 짠놈이 아니고 거기다가 배짱까지 있어 협박도 통하지 않던 놈인데 이 작자가 투전을 걸어오지 뭡니까?”
 “허? 그거 별일이군?  풋고추는 상추가 있어야 제맛인데 말야….”
 홍경래는 풋고추 하나를 씹으며 말했다. 고추는 단숫(丹琡)으로 담배와 함께 조선 후기 전조선인의 사랑을 받던 것 중 하나다. ‘담정총서’의 저자 김려(金慮1766-1821)는 고추와 상추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마당가에 심은 어린채소
 듬성듬성 초가집을 둘렀네
 고추는 사계절을 먹을 수 있지
 이롭기는 채소중의 으뜸
 여름철 주렁주렁 열리면
 한움큼 손으로 따오지
 겨울 김장 고추가 반이라
(冬菹兩居半) 
 맵고 짜고 향기도 좋아
 녹각채(향료)도 이보다 못하니
 은근히 무배추와 견주네
 가늘게 빻아 소금 메주 섞어
 빛깔 좋은 고추장을 만드네
 고기 짓이겨 생강 계피 넣고
 씨를 발라낸 고추 속에 넣고
 송편마냥 죽 널어놓고
 시루에 푹 쪄내면
 아름다운 무늬 화려하기도 하지
 ‘강황’이 ‘채보’에서 빼 놓기는 했지만  오늘날은 가장 귀한 것일세(於今最淸族)
 식객이 따로 있나? 고추예찬을 늘어놓는 18세기 말 19세기 초기를 산 선비 김려의 손끝은 주방장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고추가 16세기에 들어와 조선의 식단을 완전히 장악한 증거이며 우리가 알고 있던 완고한 조선의 선비들의 이미지(?)가 얼마간은 교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려는 김조순의 절친한 친구로 이런 사실적인 문장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이옥과 함께 정조에게 핍박 받았던 문인이기도 하다.
 “형님, 보러가시죠? 어차피 오늘 이곳에서 주무실 거 아닙니까?”
 “그래, 한번 보자 오랜만에 고수들  바둑도 구경하고. 그런데 담배 오백 근은 과한 거 아니냐?”
 “증포삼 오십 근 값이니 엄청나죠. 형님, 횡재 아닙니까?”
 담배는 고추와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 들어와 18세기에 와서는 술보다 더 필요한 기호 식품이 되어 있었다. 담배는 재배 기술의 미발달로 팔포나 곡식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조선의 담배 시세를 정확히 기록한 기록을 필자는 찾지 못했다. 다만 청나라의 순치(효종시절) 때 담배 1근이 쌀 5두에서 10두라는 기록을 유추해 보면 이 시절 담배 5백 근이면 백미 수백 가마는 족히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2007년 9월) 학회에 보고된 북상기(北廂記)라는 18세기 한문 소설에 바둑 내기로 담배 5백 근을 잃고 지불할 능력이 없어 첩을 빼앗기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아도 당시 담배의 상품성이 인정된다.
 “군칙아, 뭔가 있는 거 아니냐?”
 “뭐가 있다뇨 형님?”
 “허낙생이 너에게 그리 큰 돈을 잃어줄 인간이 아니잖아?”
 “하하, 뭐가 있겠어요? 헛지랄하면 죽여 버리지요.”
 우군칙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허낙생을 투전판에 끌어 들이느라 무진 애를 쓴 모양이었다.
 “하하, 헛지랄? 군칙이 너에게 돈을 따면 헛지랄이냐?”
 “아이고 형님, 잃을 수가 없지요. 한양 고수 아닙니까? 촌놈이 데려온 놈이야 기껏 향기(鄕碁) 아니겠습니까?”
우군칙이 입맛을 다시며 자신감을 표했다. 홍경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모처럼 흥미로운 구경을 만났다는 생각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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