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역사 시리즈] 수덕사에서 울고 있는 두 여자.
[예산 역사 시리즈] 수덕사에서 울고 있는 두 여자.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9.02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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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엽 나혜석 두 여인의 수덕사 시절의 재구성을 꿈구며.

방안에서 천만번 소원했네요.

나가라고요? 청산이 무너지면 그리하지요.

물위로 저울추가 뜨고

황하물이 다 마르면 그리하지요.

대낮에 참성과 진성이 함께 나타나면 그리하지요.

북두칠성이 남쪽 하늘에 뜨면 그리하지요.

나가라고요? 그리는 못하네요.

한밤중에 해가 뜨면 모를까요.

[枕前發盡千般願/要休且待靑山爛/水面上稱鐘浮/直待黃河撤底枯/白日參辰現/北斗回南面/休卽未能休/且待三庚見日頭.]

중국의 고대 시 '보살만'의 한편이다. 여성의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도 여성들은 이렇게 문학으로 호소했다. 인연의 가치와는 아무 관련 없이 집안의 권유로 시집을 가 처첩을 지속적으로 들이는 남편에 한마디 항의를 했다고 하여 내쫒김을 당한 여자의 위침속에

조선의 한 소녀는 홀로된 아비를 위해 이렇게 하소연한다.


김자년(1698-1715)으로 수년전 연세대 고전연구소에서 그녀의 편지 두통이 발굴 소개되었는데 그 내용이 자못 '심난'하다. 김자년은 어머니를 일찍 잃고 혼자 사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열여 덜 살에 중병이 들어 투병중 이 유서를 쓰게된다.

아버지.

당신이 마주할 혹독한 상황이 소녀에겐 천추의 한입니다. 그 한은 천지신명과 아버지와 저만이 아는 일 입니다. 어찌 긴말을 더하여 아버지의 슬픔에 불효를 보탠단 말입니까.

사랑채와 내실(아버지와 자신이 거처하는 공간)에 담장과 중문이 있어 밤에는 서로 기침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등불이 다하도록 아버지 일어나 앉으셔 대화할 사람 없이 적적한 모습을 소녀는 밤중에 몇번씩 사랑채를 바라보곤 했나이다.

그러나 사랑채로 나서지 못하고 지켜본 것은 호랑이를 만날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밤중을 경계해야 한다는 여자의 법도가 엄혹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어찌하여 아버지께 아들을 주지 않고 소녀를 여자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늦은 저녁에 손님이라도 한분 오시면 소녀는 그분이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고 가신다는 것이 너무도 기뻐 아침저녁으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 바치는 것이 즐거움이었답니다.

그러나 오늘 소녀가 죽기에 이르니 앞으로 그일을 누가 한단 말입니까. 필시 일을 당하면 아버지 큰병이 나셔서 초상도 치루지 못하고 군자를 운운(?) 하는 세상의 입방정에 오를까 걱정입니다.

아버지 보셔요.

소녀가 죽거든 바로 다음날 미동에 사시는 고모댁에 가셔 얼마간 지내시기를 소녀 천번만번 빕니다. 만약 이말을 헛투로 들으신다면 소녀는 죽어도 눈을 못감을 것입니다.

[告訣書]

父主酷毒精事.女之千告寃.惟有天知神知父知我知. 何必長言以增父悲懷. 以重吾不孝之罪.

但廬幕如內室隔絶中門. 夜珦聲息不及. 每於風雨昧冥之夜. 燈盡更深之際. 不念其獨坐不眼. 無與晤語者

自不覺一夜三四起.佇立中門以深父睡而己. 不敢出頭中門外. 非是伯遇虎也. 女子之行夜不敢出也.

天之何爲便父無子. 便我爲女 有客暮之 則傾喜其父有宿伴. 朝夕之拱 另爲盛備 今吾將死矣. 父以九斷之腸 觀我之木則生大病. 恐不能終喪. 將不爲復世君子之所容啄者乎. 必以我死之翌朝. 向美洞姑母家. 以保身之地. 萬萬血祝 苦以爲亂言.而不從我目必不暝矣.]

-自餘都 在昨日書幅中 乙亥十月目每朝. 不孝女 永訣書.

 

'보살만'과 '김자년'의 글은 정절과 효도라는 착고로 여성의 운명을 옥죈 대표적 모습이다. 한국의 여성중 '나혜석'과 '김일엽'이 있다. 두 여성은 예술가이자 질곡의 시대와 사회에 저항했던 투사다.

예로부터 예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살아 있을때는 못죽여서 안달이고 죽고나면 아름답다 칭찬한다는것이다.(生卽欲殺之死後方稱美). 이말은 오늘날에도 어느정도 부합하는 말이다. 오늘을 살지 않고 내일을 살고자 하는 예인들의 부운(浮雲)에 대한 적당한 말로 특히 여성 예인에 대한 헌사(?)다. 이땅에서 나혜석 김일엽에 이보다 부합한 평가는 없다.

1940년 수덕사 지금의 수덕여관 자리는 여관이 아닌 신도들을 위한 숙박소가 있었다. 먼길을 찾아온 신도들의 편의를 위해 수덕사에서 운용하던 숙박소를 수덕사가 재정 압박을 받을 때 일반인에게 매도를 했고 매도자가 당시 일본 동경에서 요미무리 신문 보급소를 하며 돈을 벌어온 '이응로'였다. 이것이 진정한 ' 수덕여관'의 출발이다. 수덕여관의 전신이던 16칸 디긋자 초가 마당 평상에 나혜석과 김일엽이 앉아 있었다. 두 여자는 깊은 침묵속에 앉아 있었다. 말없는 말이 그들 사이에 존재 했다. 1896년 생으로 친구 사인인 두 여자는 마흔 중반으로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격은 여자들이었다. 일엽은 김일엽의 애인이었던 이광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김일엽의 본 명은 김명주 만공스님이 지어진 법명은 백연도엽(白蓮道葉)이다. 다시 말해 김일엽이란 이름은 만공스님이 지어준 것이 아니라 애인 이광수가 지어준 것이다.

김일엽은 1934년 입산했다. 김일엽은 남자복이 많았다. 본인의 입으로 이노익 임장화 이광수 오오타세이죠(아들이 있다) 임노월 백성욱등과 동거 또는 결혼을 했다. 김일엽이 불가에 귀의 한 후 대처승 하윤과 눈이 맞아 환속을 당행 결혼을 했다가 다시 이혼한 케이스로 김일엽을 향한 세상의 지탄(?)이 이해 된다. 어떤 연구자는 이 남자들에 방인근과 국기열을 더 추가 한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국기열과는 동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김일엽은 당당하다. 남들이 이 일을 거론하며 조롱하면 타인이 왜 남의 사업에 관계하냐? 이런 사자후를 토한곤 했다. 김일엽의 진면모는 다음의 글에서 극명하게 표출된다.

(나를 완성하자. 그리고 내 자아 가운데서 엄숙한 인생을 창조하자. 나를 자위할 만한 예쁜 이상을 찾고, 내 인격을 존중히 해줄 지식을 닦아라. 그리고 내 감정을 보드랍게 해줄 꽃다운 정서를 기르자. 지금 내게 대하여는 인생의 외형은 아무 가치가 없다. 사람의 안목을 어둡게 하는 금전이며 명예며 지위는 일문의 가치가 없다. 모든 ‘때’는 내게 대하여 다 신성하다. 나는 일시라도 꽃답게 흘러가는 ‘때’를 더럽히지 말자. 신성한 ‘때’는 새로운 나를 위하여 충실한 생활을 엮어줄 것이다. 김일엽)

본명이 나명순인 나혜석의 남자 편력은 이보다 조금 덜하나 지탄은 나혜석에게 열배는 더 쏟아진다. 나혜석은 일본유학중 최승구와 연애를 하다가 최승구가 병으로 죽은 후 사별남 김우영과 정식 결혼을 한다. 나혜석은 첫 번째 남자 최승구를 진정 사랑했던 모양이다. 김우영에게 부탁하여 최승구 무덤의 묘비를 세우게 하는가 하면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하는등 마음을 잡지 못하다 김우영이 유럽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그곳에서 김우영의 외교관 동료 최린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다 이혼을 당한다.

나혜석은 김우영 사이에서 아들 딸을 둔 상황에서 이혼 후 최린과 연애를 하다 세상을 전복 시킬 만한 사건을 일으킨다. 최린을 혼인을 빙자한 정조 유린자로 고소를 하고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여 조선을 얼어붙게 한다. 이 사건후 나혜석은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나혜석이 만공을 찾은 것도 이 때이다. 만공스님은 귀의를 청하는 나혜석에게 고근(古根)이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귀의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혜석도 김일엽과 비슷한 글을 세상에 공표한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 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나혜석)

나혜석은 6년여를 수덕사 아래 신도숙소와 아랫마을 주막에 식모겸 주모로 머물며 보내게 된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동년배 친구다. 각자 문인이란 소통의 매개도 있다. 예인으로 같은 여성으로 남성위주의 세계에 대한 도전 정신도 같았다. 그러나 이속에서 두 여성은 독립운동에 참가를 하는가 하면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는등 활동을 하다 투옥된 경력도 있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삶과 정신에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생각과 행동을 펼쳐 온갖 손가락질을 자초(?)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저항과 하소연은 남성과 동등한 여성들의 시대를 이끌어낸 선각자였다. 문학평론가 장은영은 이 두 여성을 이렇게 평가한다.

나혜석= 사건의 중심에서 세상과 싸운 여자.

김일엽=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낸 후 글쓰기로 돌아간 여자.

한국불교 선종의 만개지다. 경허 만공 마벽초로 이어지는 선의 강물이 흐르는 강변에서 엉뚱하게도 나혜석 김일엽이란 두 여자가 울고 서 있다. 천년 수덕사, 세상에서 상처 받은 두 여자가 수덕사의 그늘에 찾아들었던 그때 그 시절을 복원해 낸다면 그럴수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덕숭산 아래 수덕사와 그리고 예산을 기억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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