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칼럼] 한여름의 독서
[충청 역사칼럼] 한여름의 독서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8.11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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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스름에 일어나 양치하고 우유를 조금 탄 커피 한잔 마시고는 책을 한장 펴 옛 서찰을 한 편 읽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내용이지만 한문은 반복의 맛이 있기에 이 또한 새롭습니다. 

- 있는 사람은 재물로 인사를 하고 배운 사람은 좋은 말로 안부를 묻지만, 오늘 이 사내는 달리 보내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먼저 손을 모아 마음속을 가다듬고 산수간에 계신 선생께 인사를 묻습니다.
세상에 진실이 떠난 지는 오래고 크게 어지러운 풍토가 가득합니다.  
길거리에 군자인 척 하는 사람은 넘쳐나도 천리간에 눈밝은 사람은 없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야만의 땅이기에 그러하겠지요.
저는 지금의 시대를 그렇게 봅니다. 재주는 준비되었다 할 수 없어도  하고자 하는 바는 있으나  어디에도 한마디 물어볼 사람 없습니다.
본받고 따를 만한 사람을 찾아 헤매도  지혜의 장은 커녕 겨우 생선전 정도에 견줄 수 있으니 서남해 수백 리 안이 겨우 겨우 이렇습니다.

(富送人以財, 仁送人以言, 今將辭夫子,可無攸贈施, 先敬舒陋腹, 請陳隱凡前 眞風遠告逝, 大偉斯與焉, 閭巷滿章甫,千里無一賢, 州里旣愁愁, 蠻貊理固然. 我生當此時, 質亦非諶姸, 所以行己道, 將向問無緣, 歷訪芝蘭室, 意是鮑魚廛, 南室窮百城, 九韋靑山春.)

초의가 다산선생에게 보냈던  서찰로 내용은 충격 자체입니다. 
젊은시절의 초의는 당대의 지식인 사회를 거의 조롱과 경멸하며 마음속의 울분을 내 지릅니다.
오직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다산 한 사람이라 하고는 특히 조선이 원래 오랑케 땅이라는 자폭에 이릅니다.
문자옥에 걸리고도 남을 만한 발언을 자신의 스승에게 서슴치 않는 초의의 발언에 자신의 처지 또한 사상범으로 유배를 와 있는 다산의 입장이 오버랩 됩니다.
혈기방정은 사람의 성장과정이겠지요.
왜냐고 묻고 따지지 못한다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 중 재목은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이 새벽에 젊은 초의의 반항의 발언이 귓전을 맴돕니다. 
  오늘은 딸 아이를 데리고 한양을 갑니다.
  열다섯 살 그냥 혼자 있기 좋아하는 아이, 먹을 것만 있다면 한달도 방안에 있는 아이... 구위가 청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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