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 칼럼] 애완견의 시간
[충청 역사 칼럼] 애완견의 시간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7.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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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투데이/ 이청 논설위원]  20세기 중반의 등반가 ‘킨스호퍼’는 낭가파르밧을 등정하고 하산 할 때 ‘바즈인’ 분지에서 이상한 현상을 겪는다.

아이젠이 벗겨져 자신의 아이젠을 다시 묶는 것이 당연한데도 ‘킨스호퍼’는 자신이 눈밭이 아닌 6월의 담배밭을 걷고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수십년 후 단독으로 낭가파르밧에 올랐던 ‘라인홀트 매스너’는 8부 능선의 암벽을 오를 때 앞뒤로 몇명의 다른 등반인들이 함께 오르는 착각을 했다고 한다. 산악인들은 해발 7천미터에서 부터를 죽음의 지대라 부른다. 희박한 산소와 강풍 그리고 극한의 추위는 생명을 죽음의 터널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여서 그렇게 명명한 듯 하다.

두 사람의 경험담은  죽음의 지대에서 만나는 색다른 이야기다. 세계적인 산악인인 ‘매스너’는 죽음의 지대를 건널 때 마다 영혼의 깊은 고양을 느꼈다고 한다.

강력한 엑스터시 즉 몰입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몰입은 시간이 멈춰버린 착각의 시간인 ‘크로노스타시스’와는 다르다. 시간이 멈춰버린 착각은 시간경험의 장애인 코타르증후군 환자의 증상이다. 이 환자는 나는 없고 심지어 현실속에서 나는 죽었다고 믿을 정도인데 대체로 회의와 자기 비관이 강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몰입과 ‘크로노스타시스’는 다르다. 이 몰입이 동양의 고전 춘추에 여러번 등장하는데 샤먼이 구우(求雨)를 하는 장면(출전 예기)에서 압권으로 등장한다. 샤먼은 팔월 땡볕 아래서 비가 오기를 원하며 한바탕 신명의 춤을 추는 데 그 동작 하나 하나가 천변만화로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기묘한 춤 동작을 기록하기 위하여 한자 삼천자를 아는 서학동(書學童)이 필요 했는데 (출전 한서) 이들이 훗날 사관(史官)이 된다.

이 기우제에서 실패한 샤먼은 팔월 땡볓 아래서 처형으로 화형을 당했고 또 다른 샤먼이 나름의 창작 무(舞)를 선보이며 신명의 무대에 데뷔를 한다. 비는 과연 내릴 것인가. 샤먼이 호명하면 하늘은 맞장구를 쳐 줄 것인가. 고대의 샤먼의 폭무(暴舞) 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자 바람이 분다. 강가의 갈대숲이 비바람에 난분분 쓰러진다.

이곳에 홀연히 등장한 샤먼은 의미 없는 어떤 성어(聲語)를 외치며 끊임없는 주문을 건다. 그의 곁으로 신물인 흑백의 두 마리 개가 다가와 갈대숲을 향해 하울링을 시전한다.

의미 없는 의성(倚聲)은 백왈흑왈(白曰黑曰)의 삼중주로 세찬 비바람을 타고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애완하는 개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연구가 있다. 개를 사랑하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애완견이 나와 함께 즐거워했던 어제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연구자 토마스서전포트)는 것을 애석해 한다.

아 나와의 생활이 6년이 된 애완견 포메 밍키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벽난로 앞에서 맛나게 뜯던 뼈다귀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바로 어제 성당 공터에서 공을 찾아 신나게 뛰어 놀던 기억도 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그말을 무시하기에는 심리학자 ‘토마스서전포트’가 너무 위력적이다.   그래도 자판을 치는 이 순간 나의 애완 포메 밍키는 비가 오는데도 잠깐 밖에 나갈 수 없느냐 아양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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