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역사 칼럼] 추사 김정희를 생각한다
[충청 역사 칼럼] 추사 김정희를 생각한다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9.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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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를 잘 안다는 최완수 지두환 등의 연구를 보면  ‘추사가 실사구시에 입각해 조선후기로 오며 시대의 부담으로 작용한 성리학을 극복하고 북학사상을 완성했다’는 거창한 인물평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연구는 추사가 일세의  명필 예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서예학에 정통했던 대학자로까지 나아가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추사가 글씨 잘 쓰고 그림 잘 그렸던 자연스런 예인의 인식에서  대학자로 길을 잡는 데는 약간의 적응이 필요하다.

추사는 '주역주소(周易注疏)'라는 저술을  남겼다.

지두환은 이 책을 연구하여 추사가 실사구시를 통해 훈고와 성리학의 부정적인 모습을 극복한 학자라 평가한다. 실사구시라는 말은 한서(漢書)가 출전이다.

한서 헌왕전에 헌왕이 학문을 닦고 옛것을 좋아하고 사실에 입각한 것을 구했다(修學好古實事求是)는 것이다. 실사구시는 공리공론에 경도되었던 중국적 학문 방법의 균형을 잡아주는 선언으로 오늘날에도 통하는 말이다.

필자가 일독한 추사의 주역은 다산의 주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역이 점술책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추사의 주역은 색다른 것도 아니다. 그런 이론은 추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되는 담론이다. 다만 주역에 대한 저술이 없는 독서인은 학자라 할 수 없다던 조선의 인식아래서 이해를 하면 될 듯하다. 역사의 한 인물에 대해  너무 지난친 칭송도 부담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쨌든 추사는 자신의 수많은 글편 속에 20여 건의 바둑담을 남겼다. 추사는 바둑을 즐기면서도 바둑에 대한 인식은 호불호의 중간점을 택한다.
그 중에서 바둑을 부정적으로 그린 글 한편을 소개한다.

조희룡에게 준 글인 듯하다.

조희룡은 추사를 능가하는 화가로 추사의 막하(측근)라는 인연도 있었다.

내 동생의 물건인 바둑알을
아끼지 않고 그대에게 주네
듣기로 이 늙은 용의 눈알은
껍질 속의 과일씨가 땅에 떨어져
바둑알로 변한 것이라
공부하는 자들은 꺼리는 거라네
흰것이 글을 쓰는 종이라면
검은것은 물을 빨아들일 형상,
그 모양이 좋지 않기에
문어도 먹지를 않는 것이라지.
청운의 높은  꿈도
문란한 조정에 서면 비실비실
온갖 일을 쉽게 뒤로 미루고
꿈 해몽 풀이는 악몽이기 십상,
이것들이 모두 바둑알 때문
손실은 스스로 가려야 한다네
또 한번 인생이 주어진다 해도
젊은 혈기는 그 타령일 터...
손해가 이와 같으니 그대 위해 한번 탄식을 한다네.
( 阿仲手中棊  贈君無吝色 我聞老龍子 墮胎如果核  此棊之化成  擧子所忌剋 白者兆曳白  黑者象飮黑/ 其象甚不吉 如章擧不食 怪君靑雲手 郞潛久偪仄 百事易成魔 六夢或爲噩/ 皆是棊所使  得失應自擇 又復忽减年 少者成侵斥 其害乃如此 爲君一太息 )  -완당전서-

조희룡은 금기서화 등 8능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조희룡은 추사가 고금도로 유배를 떠날 때 추사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다.
흑백 바둑알을 용정(龍睛)으로 표현한 말이 주목된다. 늙은 용정을 손에 잡는 순간 난가(爛柯)를 피할 수 없다는 구절이 선연하다.
난가는 자칫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수다.

오락에 시간을 낭비해서 좋을 일은 없을 터이다. 그러나 추사는 또 말한다. 난가에 들어 횡액수를 당하는 것도 당사자의 책임이라 말한다.

육몽(六夢)은 ‘한서’ 출전의 말로 고대인의 꿈 해몽법이다.육몽은 길몽과 흉몽이 함께 하기에 삶의 손실을 가리는 것도 결국 존재의 책임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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