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스승의 사표 연암 박지원
영원한 스승의 사표 연암 박지원
  • 이 청 논설위원
  • 승인 2019.09.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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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34세였던 박지원은 16세 어린 제자 이서구(1754-1725)와 마주 앉아 있었다.

이서구는 양반가문의 자식으로 박지원의 집과 대문을 마주할 정도로 가까운 인연으로 아동기부터 인연이 있었다. 박지원은 총명하고 부침성 있는 이서구를 수시로 불러 글을 가르쳤고 이서구는 즐겁게 이를 받아들였다.

이 날 이서구는 바깥에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박지원에게 했다.  "제가 글을 배우기를 수 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묻기를 경전에 있는 것이냐 합니다. 제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말입니다. 하면 마구 화를 냅니다. 스승님 이게 잘못된 겁니까?"

이서구는 왜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박지원은 왜냐고 묻지 못하는 사람은 앵무새와 다름 없음을 설파하는 사람이었다.

박지원은 이서구의 이 질문을 받고 기상천외한 답변을 한다. 박지원은  두손을 이마위에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번 절 한 후 무릅을 꿇고 말한다.(不接撰手加額三拜跪曰)
"과연 그말이 맞다. (너는) 끊어진 학문을 이을만하다(此言甚正 可與絶學)" 출전이 박지원의 저작 '녹천관집서'이니 팩트라 할 수 있다.

어린 제자의 이 쓸모 있는 질문에 무릅을 꿇고 절까지 하며 격려하는 박지원의 모습은 충격을 넘어 전률이 일어날 정도다.박지원은 이 때보다 4년전에  18살 박제가가 자신을 찾아 와 박제가

임을 밝히자 마당으로 뛰어 내려와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를 하고는 손수 쌀을 씻어 밥을 해 먹이고 밤을 새워가며 자신이 지은 글을 보여주며 학문의 길로 안내를 했었다.
박지원은 이서구와 박제가에게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가르쳤다.

박지원은 법고는 옛 흔적에만 머무르고 창신은 괴변만 늘어 놓는다(法古者病泥跡創新者患不經)며 법고와 창신의 균형이 세상의 잣대가 돼야 한다고 설파한다.

박지원은 이서구 박제가보다 열살이 어린 서유본(1762-1822)을 지도하며 비슷한 것은 가짜(似己非眞)이니 새로운 것을 창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은 온전히 갖아야 한다(新字雖難創我臆宜書)고 지도한다.
박지원은 한 세대 차이인  서유본을 한강변의 한 집에서 삼일밤을 지샌 후 서유본에게 다짐의 글을 준다. "(그대가) 젊은 날 노력을 한다면 앞날이 창창 하리라(願者努壯年 全門正東閜)"
박지원은 사승관계로 법을 내리는 승가(불가)의 선적방식으로 제자들과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는 교육방식을 보여준다. 

스승에게 이런 방식의 지도를 받고 마음의 울림이 없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서구 박제가 서유본은 스승의 바램대로  18세기를 풍미한다.

"법고창신'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세상을 들썩이는 모습위에 박지원선생의 이 말씀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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