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정신 지켜나가야 한다.
3.1운동의 정신 지켜나가야 한다.
  • 충남투데이
  • 승인 2019.02.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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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일어난 3.1운동이 금년으로 100주년을 맞이한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지자체들이 3.1운동을 되새기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충청남도 또한 도차원의 대규모 행사를 준비했다.

 독립기념관이 위치한 충남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한용운과 독립운동하면 가장 떠오르는 인물 1순위인 유관순 열사의 고장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것이다. 

 3.1운동은 독립을 위한 1회성의 몸부림이나 즉흥적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과정 과정에서 다양한 선제적 역할과 뜻있는 선구자들의 희생과 노력의 산물이다.

 기간 또한 길게는 5개월 이상 산발적으로 반복된 투쟁이었고 초기 비폭력 시위에서 후기에는 무장을 통한 공공기관 습격 등 독립을 위한 과감한 투쟁으로 변화했다.

 또한 초기의 유학생과 종교지도자 및 학생운동 중심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고종의 장례식에 모인 인파들에 의해 지방 도시로 전개되면서 상인과 노동자 등 계층의 확산을 통해 전국적 독립운동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후 농촌에 까지 독립운동이 확대되면서 몽둥이와 죽창으로 무장된 본격적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또한 독립운동의 산물로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등 우리나라 독립의 새로운 지표가 되는 시점을 이루었다.

 준비과정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계층이나 상황별 운동 형태가 달랐다.

 일본 유학생 중심의 독립운동 준비 과정이 있었고 기독교와 천도교 중심의 독립을 위한 준비과정이 별도로 진행되어왔다.

 그 뿐만 아니라 일부 선각자들에 의한 독립의지 표명의 일환으로 세계열강에 우리나라 독립의지를 표명하는 문서나 인물을 보내는 운동을 하는 축도 있었다.

 3.1운동의 또 하나의 커다란 의미는 여러 계층과 상황 또는 종교별로 이루어진 독립운동을 하나의 운동으로 통합한 것에 그 의미가 있다.

 각자의 상황이나 당시의 역할 등을 주장하지 않고 민족 독립이라는 명제 앞에 본인들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힘의 구심점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파 단계에서 초기 독립운동을 주도한 세력인 학생과 유학생 그리고 종교지도자 등이 사망하거나 구금되어 독립운동을 이끌어 나갈수 없는 상황에서 상인들이나 노동자 들이 일어나 그 빈자리를 메우고 그 후 다시 농민운동으로 확산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민족정신의 새로운 전기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의 사농공상의 사회계급의 여파가 이어져온 과정에서 3.1운동은 이러한 사회계급이 타파되는 실질적 전기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조선시대를 마감하고 대한제국이 열리면서 사회계급이 일부 변화가 일기도 했지만 여전히 계층간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3.1운동이 독립운동의 기념일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면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사회계급의 체계가 무너지고 국민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의 삶을 구현하기 시작한 원년이라는 것과 종교와 지역 그리고 사상의 차이를 극복한 최초의 민족의 완벽한 통합의 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일제의 통계에 따르면 3·1운동 이후 3개월 동안 시위진압과정에서 7,509명이 사망했으며, 15,961명이 상해를 입었다.

 46,948명이 구금되었고,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가 소각되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3.1정신의 계승과 발전에 충남도 차원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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