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로맨스의 차이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
  • 충남투데이
  • 승인 2018.11.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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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차이는 주체의 차이이다.

일반적으로 로맨스는 내가 한 것이고 불륜은 남이 한 것이다.

그 행위나 목적 또는 결과에 대한 모든 것은 다음 문제다.

내가 하지 않은 행위를 모두 불륜이라고 판단하는 우리네 삶의 잣대 문제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참여하지 않은 일은 모두 로맨스가 아닌 것이다.

두 번째 차이는 처음이냐 나중이냐의 차이이다.

역사적으로 처음 시도한 모든 것은 불륜 취급을 받았다.

고려 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불륜이었고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이 당시의 천주교에서 보면 불륜이다.

이외에도 많은 처음의 사건들은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것이고 비판이 행해진 것이다.

즉 당시의 윤리라는 잣대를 대면 불륜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사회 악이라는 잣대를 댈 정도로 문제시 했다.

그러나 최근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누구나 하는 게임이 되었으니 과거처럼 문제시 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결과가 나오기 전과 후의 문제다.

아무리 문제를 제기하고 비난을 받다가도 결과가 나온 뒤 잘한 것으로 칭찬하는 경우도 많다.

젊은이들의 연애 모습을 문제의 모습으로만 보다가 막상 결혼하면 축하한다고 호들갑인 것이 우리네 정서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모습을 볼 때도 저렇게 해서 되겠나? 하는 시선으로 비판적인 평을 하다가도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럴 줄 알았다고 난리 법석을 떤다.

새로운 행사나 기획을 하면 문제점만을 찾기 혈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 요인이나 향후 발전에 대한 비전을 보지 않고 첫 시도의 문제점을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 왜 달리지 못하느냐고 탓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첫발을 띄는 아이는 당연히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넘어지는 순간을 반복하다 보면 일어서게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이같은 과정을 겪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처음 시도하는 경우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과감하게 도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회와 언론 등 목소리를 내는 곳 마다 부정적 결과를 예측하고 시원찮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가 예언자였던 것처럼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해가며 점차 위상을 높일 때 쯤이면 행사가 본인 때문에 성공에 이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함평의 나비축제나 보령의 머드 축제 또한 첫 해부터 각광을 받고 환호 속에 진행된 것은 아니다.

‘축제거리가 않된다’는 비난부터 세금 낭비라는 지적까지 무수한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많은 지자체가 새로운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해 많은 고민 속에 새로운 축제나 행사를 도입하고 있다. 물론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난과 비판 속에서 힘든 첫 출발을 한다.

이제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성숙된 모습이 필요하다.

첫 모습이 마지막 모습인 것처럼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어린 아이의 첫걸음이 불안하다고 걸음마을 포기하는 부모는 없다.

손을 잡아주고 박수쳐 주고 응원하길 수 개월 이상 반복해야 아이는 정상적인 걸음을 걸을 수 있다. 불륜으로 보지 말고 로맨스로 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로맨스를 기대하며 기다려주고 응원하는 충남 도민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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