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기준
노인의 기준
  • 충남투데이
  • 승인 2018.09.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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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수준 그리고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최근 우리의 삶에 기준하나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바로 노인에 대한 기준이다.

과거 노인의 기준은 보편적으로 연령에 의한 기준이었다.

세계적으로 사용된 노인의 기준은 65세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를 노령화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최근 시골마을에서 65세 이상 되신 분이라고 해서 노인이란 칭호나 할아버지란 호칭을 쓰면 경을 칠 수 있다.

경로당에 가면 65세는 앉아있지도 못한다는 우스겟 소리가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인의 기준을 연령만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지역에서는 65세면 노인이지만 시골 마을에선 65세면 청년이다.

건강한 상태에서 안정적 삶을 누려온 65세는 아직 젊지만 온갖 풍파를 겪으며 질병과 사투를 벌여온 65세는 노인이다.

80세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왕성한 사고로 생활하면 노인일 수 없고 50세라고 해도 혼자 고독을 벗삼아 살아간다면 노인에 가깝다.

젊게 사는 노인들은 얼마든지 있다. 생계를 위한 힘든 삶을 사는 노인들도 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본인의 모든 것을 왕성하게 불사르는 노인들의 모습은 이미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스포츠센터 등에는 더욱 왕성한 노인들의 활동모습에 공경의 마음이 아니라 존경의 마음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자주 연출된다.

꾸준한 운동 결과 40대의 몸을 갖고 계신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참 배울 점이 많다.

이분들의 모습에서 노인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바쁘게 움직이고 운동하며 일하는 모습은 노인의 모습이 아닌 왕성한 사회인의 모습 그 자체다.

반면 최근 젊은 세대들의 무력감 호소는 이미 사회 전반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포병들이 사용하는 ‘3보 승차’란 용어를 젊은 사람들이 사용한다.

운동보다 컴퓨터게임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첫 세대인 30대 중반부터 최근 학교를 졸업한 세대까지 무력감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것이 귀찮고 아무 일도하기 싫어 점점 나태한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배달음식의 활황이나 택배의 빠른 보편화가 결정적 증거다.

직장의 이직률이나 스포츠클럽의 재가입률 등이 현저히 높아지고 많은 사람과의 보편적 문화형성 자체가 쉽지 않다.

흔히 하는 말로 ‘철드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결혼 연령도 점점 늦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출산율 또한 세계 최소의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왕성한 노인들과 무력한 젊은이, 과연 노인의 기준을 연령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기준은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노인으로 살 것인지 젊은이로 살 것인지는 오롯이 본인 몫이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고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노인으로 살기보단 왕성한 모습으로 젊은이들의 삶에 과감히 함께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사용을 일정시간 절제하고 운동이나 그 밖의 취미활동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무력감을 이겨내야 한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

노인으로 살 것인가 젊은이로 살 것 인가 선택의 순간 가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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