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논할 때가 아니라 자연이 현상을 통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4차 산업혁명을 논할 때가 아니라 자연이 현상을 통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 충남투데이
  • 승인 2018.07.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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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의 기승이 심상치 않다.

열흘이상 이어진 무더위는 많은 환경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천수답의 벼는 말라져가고 알알이 영글어 가던 옥수수 잎이 갈색으로 변했다.

모래밭이 제격인 땅콩은 기 잎들이 말라가고 수박밭에도 더위를 견디지 못한 수박들이 빨간 속살을 드러내 놓았다.

그동안 많은 시간 인간은 본인들이 전지자인냥 많은 환경을 바꾸고 지배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거스르긴 아직 역부족인가 보다.

몇 날의 무더위에 지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무력하게 느껴진다.

나무가 잘려나간 산의 분노가 더위일수도 있다.

강줄기를 막아선 둑으로 인한 강물의 분노일수도 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뒤덥혀 숨을 못 쉬고 있는 대지의 분노일지도 모른다.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변해버린 산과 들과 대지의 고통은 모른체 하고 무더위 몇 일을 못견뎌하는 인간의 모습이 어쩌면 모순 덩어리다. 작년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정확한 뜻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후보들 마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했고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4차 산업혁명 이야기는 많은 후보자들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젠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4차 산업혁명 이라는 용어가 내포한 가장 큰 뜻은 사람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기술 향상과 전자 제어를 통한 자동화의 수준을 높여 결국 인간의 일자리를 축소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궁극적 목표이다.

연구 개발이나 기계의 영역이 아닌 특수한 분야를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기계에 의해 우리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법의 잣대를 기계가 대고 예술의 가치를 기계로부터 얻어내는 무모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결국 기계에 의해 사육되어지는 인간의 모습이 연출될 것이란 불안을 토로하는 사회학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역행하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서로 나누고 때로는 힘을 모으고 함께하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늘의 작을 가르침 하나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란 것을 그동안의 기후변화나 천재지변을 통해 우리는 수없이 겪어 왔다.

바닷물의 흐름으로 인한 엄청난 재앙도 보았고 바람의 소용돌이로 인해 폐허가 되는 도시의 모습도 보았다.

지진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긴장을 유발하는 사태도 겪었으며 바닷물의 쏠림 현상으로 인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또다시 더 많은 기술개발을 통해 인간 자신의 일자리까지 내어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자연이 현상을 통해 보여주는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할때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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