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8회/ 9장 두 혁명가 (2)
[연재소설 벽상검] 98회/ 9장 두 혁명가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14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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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김윤식을 한 두름으로 평가한 사람이 한명 더 있다. 길모어(1857-?)라는 미국 프리스턴대를 나와 조선 일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돌아간 사람이다. 길모어는 조선의 당파는 사분오열로 정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고 했다. 비교적 단출한 개화당도 한가지란다. 이 말은 이합집산이 극심했던 당시대의 정치 철새들의 동정을 말하는 것이다.

길모어는 1890년대의 서울동정을 '풍물지'로 남기고 있는데 놀랍게도 김옥균의 시 한편을 기록하고 있다. 길모어는 이 시가 매우 중요한 시라 첨언을 하고 있다. 왜 이 시가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길모어는 일본어로 된 시를 영어로 옮긴 듯하다. 김옥균이 일본어로 시를 썼기 때문인 듯하다. 김옥균이 일본어로 시를 창작할 정도였는지는 필자도 감을 잡을 수 없다. 이 시는 필자가 영어를 모르기에 '신복용'의 번역을 소개한다.

청춘은 즐거움과 함께 떠나고

내 머리에 백발이 찾아드네

몇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역시 가리니.

소년시절의 꿈이 그립구나.

내 가슴속의 이상도

젊은날의 희망과 즐거움도

두번 다시 떠나지 않으리.

머리는 눈처럼 희어지고

몸은 굳고 쓸쓸해져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젊은 영혼의 열정이 살아있다네.

(김옥균)

김옥균이 이 시를 일본어로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한시를 누군가 일어로 번역한 것을 길모어가 다시 영어로 옮겼을 것으로 본다. 고유한 한시의 모습이 아니고 서양 시인들의 이미지가 물씬하다. 김옥균이 서양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일어로 워즈워스 풍(風)의 시를 창작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시를 일어로, 일어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 이런 서정시가 태어난(?) 것일 터이다.

김옥균은 임오군란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 일본에 있었다. 일본 유람단의 고문으로 참가하고 있던 김옥균은 군란의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을 하게 된다. 김옥균이 한양에 도착한 즉시 김윤식을 찾는다. 그러나 김윤식은 그를 반갑게 맞지 않았다.

따악.

김윤식은 아전과 바둑을 두던 중 김옥균의 방문을 받고 바둑을 거두지 않고 본척만척 한다. 김윤식의 집무청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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