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7회/ 9장 두 혁명가 (1)
[연재소설 벽상검] 97회/ 9장 두 혁명가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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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김윤식은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었던 인물이다. 두 사람 공히 박규수를 스승이라 했으니 이 말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이 두 사람을 개화파라는 한 두름으로 묶는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를 살펴보면 이상할 정도로 싸늘하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운명은 갑신정변에서 거칠게 충돌하여 공격과 방어 그리고 보복이란 인간사의 가장 비극적인 방법으로 끝난다. 나중에 김옥균을 암살하게 되는 홍종우도 김윤식의 지음을 얻어 정치적 날개를 다는 것을 보면 새삼 역사가 두렵고 무서워진다.

적어도 이 두 사람이 개화당이라는 하나의 정파에 속해 진보나 보수 등 어떤 동류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인간관계가 동지라기보다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먼 까닭은 무엇일까? 김윤식은 '공피고아'를 삶의 철학으로 알았다. 공피고아는 위기십결의 하나다. 적이 강한 곳에서는 나를 돌아보라는 '육도'와 '삼략' '기효신서' 등 중국의 저명한 병법 들에 원용되고 있는 말이다.

- 바둑으로 따져보자. 강대한 적의 지역에서 혼자 외로운 나의 바둑돌 한점은 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돌이라면 차선을 생각해야 한다. 차선은 좋은 수는 아니지만 그 수가 최선의 수가 되기도 한다.

김윤식은 조선의 형국과 조선에 몸담고 살아가는 관원인 자신을 바둑돌에 비교한다. 김윤식은 바둑에 단수가 있다고 한다. 단수(段數)는 1단부터 9단을 이르는 말이다. 소외 '단위'라 말하는 바둑의 용어는 일본에서 태동한 말인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바둑의 기력을 말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최한기가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 이기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단수(기력)가 서로 다른 것을 잊고 한번 싸워 지고 두번 싸워 지고는 성질을 내며 한냥(兩)이 두냥이 되고 기름을 태우며 날을 새우니 마침내 망측한 지경에 이르니 어찌 천선(遷善)을 바랄 수 있는가. (不念手段不齊一戰敗怒念層可)

'수단'은 바둑의 실력차 즉 기력을 말한다. 기력을 1단이니 2단이니 서양식 셈법을 적용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단위다. 최한기는 바둑으로 미루어 생각한다(測人門一)는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위기구품보다 한층 진일보한 용어가 바로 '단수'다. 위기구품과 단수가 빚어낸 말이 단위(段位)라고 보면 일본이 이 말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유시유종항봉별야. 有始有終巷逢別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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