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6회/ 8장 속음청사 (12)
[연재소설 벽상검] 96회/ 8장 속음청사 (12)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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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과 김옥균이 같은 개화파로 동지라면 두 사람은 상당한 친분 관계가 있어야 맞다. 그러나 김윤식과 김옥균의 친분 관계를 증거할 수 있는 자료나 기록이 매우 드물고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학자들의 연구도 없는 실정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김윤식과 김옥균은 개화파였다라는 인식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김윤식은 김옥균을 잘 알았다. 그리고 박규수의 사랑방을 무상 출입한 것도 맞는 듯하다. 그러나 김윤식은 박규수의 사상을 받아들이기는 하되 김옥균과는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두 사람은 이런 인연 외에 특별한 교우를 한 적은 없는 듯하다. 김윤식이 한참 연배인 까닭도 있겠으나 뜻이 맞으면 나이도 잊던, 망년(忘年)을 중요시했던 조선 사회에서 나이는 큰 이유가 되지 못한다. 김윤식의 육필 육성을 들어보자.

- 고균은 성격이 모났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치가 뛰어났지만,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바둑으로 이름이 났는지 모르겠다.

김윤식은 3.1운동에 동조를 한 후 일본으로부터 그동안 받아온 '자작' 대우 등 모든 혜택을 몰수 당하고 대종교에 출입하며 자신의 지난날을 회억하는 글을 쓰다가 이런 말을 남긴다.
김옥균이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인 것은 윤치호 등 복수의 인물이 증거한다. 윤치호는 김옥균의 동지이자 후배였다.

김윤식은 김옥균의 성격을 지적하며 바둑을 언급한다. 모나고 직선적인 성격의 사람이 어떻게 바둑은 잘 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미다. 직선적이고 불같은 성격은 바둑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인 듯하다. 이말은 널리 퍼진 말이기는 하지만 증명되지는 않은 말이다. 그러나 김윤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 바둑은 아기(雅技)다. 도끼자루가 왜 썩는가? 바둑을 대하면 이름난 기생도 명인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한다.

몰입을 말하고 있다. 행복심리학을 말하는 어떤 심리학자의 말을 빌면 도끼자루가 썩어도 몰랐다는 것은 정신의 몰입으로 이 경지에 이르면 섹스보다 바둑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2009년 바둑학회에서 '이광우' 교수가 한 말이다.

오늘날에도 바둑을 배우면 성격이 차분해진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군포에 있는 흥진초등학교를 바둑 특성화 학교로 만들고 수년 동안 전교생을 대상으로 바둑을 교습하고 여러 데이터를 모아온 한 연구자의 논문에도 아동의 셩격과 바둑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것을 볼 때 1백년전 사람 김윤식의 말이 실감난다.

김윤식은 대종교 활동을 하던 말년에 바둑에 심취했다. 바둑으로 소일하던 대동교 지도자들과 어울리던 기담(碁談)이 있는데 이 기담 중에 바둑의 기원을 언급한 점도 있다. 김윤식의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듣기에 바둑은 요순이 만든 것이 아니라 '단군'이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는 것이다.
단군은 요임금보다 50년 후의 인물이다. 제왕운기에 보면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 시점에서 한갑자 정도를 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단기'를 정했다는 언급이 있는 것을 보면 요임금 창제나 단군의 창제 등은 중국이나 우리나 오십보 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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