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4회/ 8장 속음청사 (10)
[연재소설 벽상검] 94회/ 8장 속음청사 (10)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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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 또한 김옥균 못지않은 풍운아다. 삶의 출발점과 유년기의 출생배경부터가 그렇다. 김윤식은 1835년 경기도 광주 근교의 한강변인 두호(豆湖)에서 아버지 김익태와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1남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윤식은 8세 때 부모를 잃고 근방에 살던 숙부집에 의탁하여 성장하게 된다. 공주에서 태어나 8세 때 한양의 먼 친척집에 입양을 간 김옥균의 유년기를 생각해 보라.

김윤식의 숙부와 숙모는 김윤식에게 어느 정도 사랑을 주었던 듯하다. 숙모는 박지원의 손녀로, 훗날 자신의 오라비인 박규수의 문하에 김윤식이 들어가는 인연이 되어준다. 김윤식은 박규수를 만나기 전 유신환(1801-1859)이란 학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데 문하생들 중에 민태호 민규호 등 훗날 민씨 척족의 울타리를 이루는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김윤식은 나이 40이 되어서야 겨우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갔고 박규수를 만나게 된다. 역사는 김윤식을 일러 온건개화파라고 한다. 급진개화인 김옥균의 반대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김윤식의 문집 속에 이상한 문구가 있다.

- 나는 개화라는 말이 이상하다. 개화라는 말은 변방의 미개족들의 거친 풍속을 서양의 풍속처럼 점차 고쳐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 동토(조선의 다른 말)는 문명의 땅인데 어떻게 다시 개화를 한다는 말인가?

김윤식의 이 말을 뜯어보면 동도서기(東道西器)다. 사람이 살아가는 도는 우리의 것이 좋고 사람살이의 편리한 도구는 서양 것이 좋다는 말이다. 정신은 보존하고 편리함은 받아들이자는 말로 김윤식은 실용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역사학자 정옥자는 위의 기록을 들어 김윤식은 개화파가 아니라는 논문을 쓰기도 한다. 필자는 서울대 역사학과엔 정옥자가 있어 학과가 유지(?)된다 생각했었다.

정옥자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백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필자는 그 논문을 일독함으로써 조선의 개념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옥자는 학교를 은퇴하고 지금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도서기는 중국의 '중체서용론'과 일본의 '화혼양재론'과 같은 말로 19세기 조선을 풍미한 사회문화의 화두의 하나였다.

김윤식은 개화와 척사, 그리고 민씨 척족들과의 교감, 그리고 한일합방의 동조, 그리고 3.1운동의 지지 등 굴곡된 삶을 살게 된다. 한마디로 오래 산 것이 죄가 되는 풍운의 삶인 것이다. 비상한 시대에 태어나 글을 알고 외교를 안다는 죄(?)로 망국의 책임까지 짊어졌던 사람이 바로 김윤식이다.

김윤식의 이력서를 찬찬히 살펴보노라면 차라리 그가 벼슬길에 나서기 전 40대 전반이 행복해 보일 정도다. 88세 미수까지 살다 간 김윤식의 후반기 48년은 한마디로 고난(?)의 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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