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91회/ 8장 속음청사 (7)
[연재소설 벽상검] 91회/ 8장 속음청사 (7)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1.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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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은 연회장에 앉아서 잠깐 슬픈 생각이 들었다. 옆자리에 있어야 할 왕비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왕비는 법적으로 사망자였다.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원군의 강권으로 장례를 마친 탓이었다. 왕비의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루는 것이 상례나 민비의 장례는 시골 양반집 마님 죽음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런 장례식이었다.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좋다.

녹음방창에 새울음 좋고

칠월 철렵에 시원도 하다.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좋다.

십여 명의 기녀들이 창을 뽑고 뒷자리에 정렬한 장악원 악대의 반주가 궁궐 안을 흥청이게 했다. 기녀들은 모두 장안의 기방에서 가려 뽑아온 가녀(歌女)들로 그들의 목소리는 맑고 청량했다.

"전하 이것은 연회라기보다는 아회(雅戱)이옵니다."

"아회라 했느냐?"

"네 아회라 했사옵니다."

허욱이 아희(雅戱)를 말했다. 아희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소위 말하는 풍류다. 조선 유학들은 시와 술 그리고 거문고와 바둑 등을 통해 청담을 나누는 행동을 풍류라 했다. 이것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고상한 말로 사장적(詞章的) 보유관(補孺觀)이라 규정한다.

조선 유학자들은 호고(好古)의식의 실천의 일환으로 '아희'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송희경'의 말로 필자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송희경은 고의(古意)의 시습(時習)이란 알듯말듯한 용어를 사용한다. 방고참금(倣古參今)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해 '온고지신'이다.

"니 눈에는 이것이 아희로 보이느냐?"

군왕이 허욱의 얼굴을 쏘아보며 직설적인 질문을 했다.

"전하, 술 기생 음악이 있으면 아희지 아희가 뭐 별거 있겠는지요?"

"하하하, 내가 니놈과 무슨 말을 하겠느냐? 그래 좋은 연희다. 허승지?"

"네, 전하."

"너 춤 한번 추거라. 할 수 있겠느냐?"

군왕은 허욱에게 춤을 출 것을 말했다. 그 말은 허욱을 압박하는 말이었다. 좋지 않은 감정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말에 기죽을 허욱이 아니다.

"전하, 좋지요. 전하께 소신이 재롱 한번 떨겠나이다. 여봐라, 장고를 뜯고 거문고를 때리거라!"

허욱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긴소매를 너울너울 허공으로 뿌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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