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60회/ 5장 자객 (12)
[연재소설 벽상검] 60회/ 5장 자객 (12)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1.19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인의 실종은 개화파에게 커다란 손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도움으로 작용한 점도 있었다. 3차유람단의 구성이 이원회를 책임자로 이동인을 참모로 한 원안에서 박영효가 책임자가 되는 망외의 소득(?)이 뒤를 따른 것이다. 박영효는 철종의 부마로 주변이 늘상 불안했던 군왕의 신임을 받는 몇몇 신하 중의 한명이었다. 박영효는 서재필 등 개화파의 신예들 수십 명을 유람단에 참여시켜 개화파의 미래로 삼게 된다.

신사유람단은 일본공사 하나부사가 마련해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 외교적 활동과 기술력 습득에 나서게 된다. 이동인은 이조년이 사주한 자객의 칼에 비명횡사했다. 이동인의 죽음은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완전범죄였다. 이동인의 죽음은 이동인 개인적인 불행을 떠나 조선의 개화를 위해 몸부림치던 개화파 전체에도 커다란 타격이었다.

필자는 개화기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이동인을 추적하면서 이동인이 조선사람이 아니라 일본 내각조사부(정보부)에서 공작으로 만들어낸 간첩이 아닌지 의심했었다. '이능화'를 위시한 다수의 역사학자들의 이동인연구는 역사 속에서 이동인이란 인물을 전혀 특정해 내지 못하고 주변만을 맴도는 실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만이 이동인의 실체를 기대할 수 있다면 이동인은 그저 미완의 인물일 뿐인 것이다.

필자가 살핀 여섯 명의 이동인연구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 그리고 에세이와 각종 자료로 판단한 이동인의 실종은 김홍집의 비호를 받은 이조년의 작업(?)이 맞는 듯하다. 김홍집을 이용하여 민영익에 붙어 군왕의 총애를 받는 출세의 과정을 김홍집은 두고 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김홍집(1841-1896)을 졸장부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 시대 꼿꼿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할 인물 중 이건창(1852-1896)이 있다. 이건창은 자신의 문집에 김홍집의 인물됨을 기록해 놓고 있다. 1880년 어느날 민영익이 불러 집에 갔더니 김홍집 박영효 홍영식이 있더란 것이다. 이건창은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불만이 있던 중 잘 되었다는 듯 김홍집에게 그 책의 조선보급을 따졌다는 것이다.

조선책략의 내용 중에 황준헌이 조선에 예수교를 포교해도 무방할 듯하다는 말을 했는데 김홍집이 그 부분을 빼고 군왕에게 책을 전달해 군왕을 혼동시키고 위정척사 사상에 반했다며 추상같이 나무랐다는 것이다. 이 말에 김홍집은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하더라는 것이다. 당시 이건창은 한 아문의 말단 관원으로 김홍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이건창은 자신의 문집에 뜬금없는 시 한수를 적어놓고 있다. 그 시는 성삼문의 매화라는 시다.


따뜻한 성품의 옥같은 사람

풍성하다. 눈처럼 하얀 꽃잎

서로 바라보며 말 걸지 못하고

푸른 하늘에 달빛 비추인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던 이건창은 성삼문을 닮고 싶었던 것일까. 바른말은 민씨척족들 중 가장 탁월했던 민영익도 받아들이 못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여 이 일로 이건창은 오히려 민영익에게 찍혀 더이상의 출사가 막혀버린다. 이건창은 고향 강화도로 칩거, 죽을 때까지 책을 쓰며 융통성 없이 살게 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신의 과오를 시인할 줄 알았던 김홍집의 면모를 보게 된다. 사실 김홍집의 자료도 거의 없다. 이름도 김홍집인지 김굉집인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