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42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6)
[연재소설 벽상검] 42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6)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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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 전통기전이 다다미방과 이틀바둑을 고집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어성기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어성기의 대국규정은 법이다.

1. 대국장은 에도성 구로서원(黑書院)으로 한다.

2. 출전 기사는 4가원의 대표기사 또는 후계자(아토메)여야 한다.

3. 모두 두발을 깎고 가사를 입어야 한다.

4. 대진표는 기소(碁所)에서 작성하여 사전에 인가를 받아야 한다.

5. 대국 시간은 이침 6시 대북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바둑의 종국 시간은 특별한 규정이 없다. 대체적으로 당일에 끝났지만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조금 더 훗날 바둑가문들의 경쟁으로 몇달이 걸리는 바둑도 흔했지만 어전앞의 바둑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쇼군의 참전 편의를 위해 사전에 두어진 바둑을 쇼군 앞에서 복기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 10대 쇼군 이에하루부터는 어호기(御好棋) 제도가 생겨 대국장에서 다이묘나 기타 관료들을 상대로 한 고수들의 지도대국이 벌어지기도 한다.

4가원 제도는 인도의 장기 차란가(四安家)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초기 인도의 장기는 2명이 두는 것이 아니라 4면에서 4명이 두는 형식이었다. 이것이 놀이의 편의를 따라 양 대국으로 변화를 했고 중국 한반도 일본 등으로 보급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바둑은 중국,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역사가 매우 깊다. 일본 고대의 시가집인 만엽집에 수록된 기사(碁士)의 노래가 그것을 증명한다. 일본바둑의 절대적 중흥조는 이에야스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고수는 아니었다. 일본 사서 덕천실기(德川實記)를 보자.

- 나는 중년까지는 바둑을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것도 잘 보지 않았다. 바둑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골이 빈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근자에 바둑이 망한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골이 빈 인사들을 대해 보니 나의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 무엇인가 유행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나 혼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내칠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것을 조석으로 생각한다.

1612년 이에야스가 71세 때 쓴 편지다. 한마디로 지도자의 면모가 여실하다. 이에야스는 우리가 알았던 바둑광은 아니었다. 바둑을 늦게 알았고 겨우 흥미를 가진 정도였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당시대 전 일본의 가장 주목되는 놀이였던 바둑의 속성(?)을 깨닫고 그것을 사회에 유용하게 이용하는 탁월한 안목을 보여준다. 일본바둑은 한 사람의 높은 안목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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