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41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5)
[연재소설 벽상검] 41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5)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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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우가 조선에 들어온 1880년은 바둑으로 생활을 영위해 오던 일본 바둑고수들이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막부의 질록(녹봉)이 명치유신 이후 끊어진 탓이었다. 녹봉이 끊어진 일본바둑가문의 마지막 세대가 14대 혼인보 슈와(秀和1820-1873)와 슈에이(秀榮1852-1907)다. 이또우의 조선행을 설명하기 전에 일본바둑의 개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바둑의 비조는 혼인보 산사(算砂)와 도꾸가와 이에야스다. 덕천실기(德川實記)에는 이에야스의 바둑에 대한 관심과 그와 바둑을 둔 많은 인사들의 에피소드가 보이는데 혼인보 산사가 발군이다.

산사는 이미 오다 노부나가 시대부터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히데요시를 거쳐 1603년 이에야스가 장악한 막부를 무상출입할 수 있는 중요 인물이 된다. 이에야스 막부에는 산사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바둑인이 몇 명 더 있는데 리겐(利玄) 도세끼(道硯) 산세끼(算硯) 등이었다.

이들은 조금 더 훗날 일본에 정착하게 되는 4가원, 즉 본인방(本因坊) 햐야시가(林家) 야스이가(安井家) 이노우에가(井上家)의 초대 문주들이 된다. 이에야스는 1603년 일본 바둑의 신기원이 되는 天覽棋(천왕 앞에서 두는 바둑대회)를 열고 이들 바둑고수들에게 얼마간의 녹봉을 지급하는 조치를 취하게 한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오늘날의 전문 기단의 모태를 만든 셈이다.

일본 문헌 전신록(傳信綠)에 기록된 당시 고수들의 녹봉은 많은 액수는 아니다.
산사, 리겐, 도세끼 각 50석. 산세끼 20석의 곡물 지급은 막부에 속한 도공 화공 등의 장인들에 비해 반도 되지 않는 액수다. 그러나 바둑인들은 도공이나 화공에 비해 다이묘나 공가(고위 관료)들의 빈번한 초대와 지도대국 등으로 윤택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야스 시대부터 시작된 어성기(御城棋)는 에도시대 230년 간을 이어지게 된다. 초대 쇼군 이에야스에서부터 14대 쇼군 이에모리까지 대략 120회 가량의 어성기가 이어졌고 이 기간을 통해 일본바둑의 모든 것이 완성되게 된다. 오늘날의 일본기원의 기초는 이미 어성기 시대에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성기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어성기의 룰은 명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에서 본 바둑은 장중하고 복잡했다. 하수가 상수를 청해 한판 바둑을 둘라치면 인사법과 답례품 등을 전하는 절차가 한참을 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갓 놀이 한판을 즐기기 위해 벌이는 명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벽안의 서양인에게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어성기의 바둑의 모습은 장중하고 엄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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