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39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3)
[연재소설 벽상검] 39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3)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21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둑대회의 참석자들의 면모는 화려했다. 내외적인 좌장은 박영효였다. 박영효는 많은 나이는 아니나 부마도위로 당상의 신분으로 어느곳에 있던지 빛나는 존재였다.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로 부인이 일찍 죽어 홀아비로 살고 있었다. 부인이 죽으면 즉시 새장가를 갈 수 있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었지만 부마는 예외여서 철종은 물론 고종의 애뜻한 사랑(?)을 받은 인물이 박영효다.

박영효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유대치를 스승으로 모시고 김옥균을 형처럼 따르며 공손함을 잃지 않던 박영효는 개화파의 큰 자랑이자 덕목이었다. 기연(碁宴)에는 김홍집도 와 있었다. 김홍집은 유대치와 김옥균 박영효 등이 자리한 장막 안에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간단한 음식상과 술병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늦었습니다."

이동인이 합장을 하며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그러나 김홍집은 애써 외면하며 장막을 나가 버렸다.

"자, 이공 앉으시오."

유대치가 서먹한 분위기를 털어내며 이동인에게 자리를 권했다. 김옥균 박영효 등도 김홍집의 행동이 지나쳤다 싶은지 어색한 얼굴색을 했다.

"그간 안녕들 하시지요? 오늘 기연이 푸짐합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하지만 그야 바둑열기로 훈훈하게 데우면 그만일 터...고균, 술 한잔 주시게나."

김홍집의 불경한 행동에도 이동인은 조금도 걸림이 없었다. 그가 김옥균을 지목해 술을 먼저 청한 것도 예의에 어긋난 것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하, 그러지요. 술 인심이야 조선의 미풍양속...자..."

김옥균이 술잔을 들어 이동인에게 주며 말햇다. 그 순간 장막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고균, 그 술을 제가 따르면 안되겠는지요?"

'아니 이부장?"

김옥균이 불청객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훈련도감의 오위장을 지내고 지방 수령을 지낸 이조년이었다.

"대사? 상관 없으시죠?"

이조년이 이동인을 쏘아보며 물었다. 대사(大師)라 부른 것은 승려를 지칭한 말로 이동인을 비꼬는 말이었다.

"하하, 술을 주겠다는데 뭐가 불쾌하겠소? 자 따르시오."

이동인이 김옥균이 준 술잔을 내밀었다. 이조년이 술병을 들고와 잔에 술을 따랐다.

"자, 실컷 드시오?"

"... ...?"

이조년은 술병을 기울여 이동인의 옷소매에 술을 들어 부었다. 노골적인 도전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