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38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2)
[연재소설 벽상검] 38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2)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2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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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은 집권기간 내내 일본을 동래왜관에서 더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대일본정책을 갖고 있었다. 훗날 인천 부산 원산 등이 개항이 되기는 했으나 조선 침탈의 야욕이 있던 일본은 대원군의 이 정책에 한동안 고전을 한 것도 사실이다.

대원군이 실각된 후 정권을 잡은 민씨일파는 정현덕을 문천으로 귀양을 보내고 안동준을 참수한 후 김세호를 파직시킨다. 일본과의 협상력 부족에서 온 민씨정권의 몰골(?)이지만 조선이란 거국적 시각에서는 아까운 인재들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언제 발행하느냐?"

군왕이 유람단의 출발 시간을 물었다. 이원회가 대답을 했다.

"아문에서 신년 정월로 잡은 줄 아옵니다."

"그러냐? 준비를 잘 하거라. 특히 너?"

군왕이 이동인을 지목해 물었다.

"네에. 전하."

"유람단을 적재적소로 안내해야 할 것이다. 실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 말 알겠느냐?"

군왕이 유람단의 효용성을 말했다.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었다. 지금도 쓸데 없는 일로 치부하며 이곳 저곳에서 반대 상소가 올라오는 중이었다.

"명심하겠나이다."

"그래. 그만 나가봐라."

이동인은 이원회와 편전을 나와 아문으로 돌아왔다. 아문의 각사(各司)는 유람단의 편성과 발행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이동인은 퇴청 후 곧바로 청계동으로 향했다. 오늘이 청계계곡에서 바둑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미 계곡 안에는 백여 명의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1박2일로 예정된 박회는 성대했다.

늘어선 대여섯 동의 장막이 위용을 과시했고 주방으로 사용하는 한 장막 안에서는 숙주(궁중요리사)들이 음식 냄새를 풍기며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대장금'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궁중 요리사들의 애환을 통해서 한국의 음식문화와 전통문화를 잘 보여준 수작으로 한류열풍을 주도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의 역사 안에서 궁중요리사의 중심은 남자들이었다. 궁중요리사는 여자들이 맡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세수간이니 수랏간이니 하며 궁중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듯하지만 사실은 얼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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