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벽상검] 37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1)
[연재소설 벽상검] 37회/ 4장 선기일수(善碁一手) (1)
  • 이 은호 작
  • 승인 2020.10.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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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회를 주장으로 한 신사유람단의 골격이 짜졌다. 이동인에겐 신사유람단의 총안내자의 역할이 맡겨졌다. 군왕은 이번 유람단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 유람단이 허례의식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일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이유는 누구보다 일본을 잘 아는 이동인 때문이었다.

"잘할 거라 믿는다."

군왕은 은근한 미소로 이동인을 격려했다. 부복한 이동인보다 옆에 엎드린 이원회가 더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이동인이 대답을 했다. 목소리가 편전을 울릴 정도로 카랑카랑했다.

'암, 그래야지. 기백 한번 좋구나. 이봐라?"

"네에. 전하."

"조선이 일본을 천시한 지가 오래다. 근자에도 그 습관이 남아 알게 모르게 일본을 자극한 점도 있었다."

군왕은 조선의 대일본 외교정책을 말했다.

"하여 전하, 수년 전에 여러 명을 조치하여 일본의 양해를 구했지 않았나이까?"

이원회가 끼어 들었다. 그는 통리기무아문의 당산관으로 외교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조선은 수년 전에 대일본 외교의 최일선에 서있던 삼인을 처리한 일이 있었다. 사인은 정현덕, 안동준, 김세호를 말한다.

"정승지 말인가?"

군왕이 이원회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승지는 정현덕(1810-1883)으로 대원군의 측근이었다. 대원군에게는 운현사인(雲峴社人)으로 불리던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주회나 허욱 같은 인물들을 말한다. 정현덕은 이주회나 허욱을 능가하는 인물이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북에 마행일(馬行一) 남에 정현덕이 있어 걱정 없다던 대원군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 마행일은 종성부사였고 정현덕은 동래부사로 조선 국경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정현덕은 동래부사를 무려 7년간 역임하며 동래왜관을 무대로 발호하는 일본의 준동을 막아낸 인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동래성과 성안의 시설물은 모두 정현덕이 개축 신축한 것이다.

정현덕 옆에는 역관 안동준이 있었다. 안동준은 정현덕을 도와 대원군의 정책을 충직하게 보필한 인물로 대원군의 중인 아전정치를 문제 삼는 장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원군은 정현덕과 안동준의 동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김세호(金世鎬)를 경상감사로 7년간 박아 놓기도 했다. 부사 반년 감사 일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파리목숨과 같던 조선 지방관의 임기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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